금보다 비쌌던 향신료, 샤프란에 숨겨진 잔혹한 세계사


며칠 전 오랜만에 마음먹고 요리를 하려고 찬장을 뒤적이다가, 예전에 해외 여행길에 호기심으로 사두었던 조그만 샤프란 병을 발견했습니다. 아주 작은 유리병 안에 실타래 같은 붉은 암술 몇 가닥이 들어있는데, 가격을  다시 보고는 피식 웃음이 나왔답니다. 몇 그램 되지도 않는 게 웬만한 외식 한 끼 값보다 비쌌으니까요.

물에 몇 가닥 담가두니 금세 맑고 영롱한 노란빛이 퍼져나가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대체 이 작고 가벼운  가닥이 뭐길래 예전부터 '금보다 귀한 향신료'라는 별명이 붙었을까? 알고 보니 이 소박한 붉은 실 뒤에는 인간의 끝없는 욕망과 화형대까지 등장하는 무시무시한 뒷 이야기가 숨어있었답니다. 오늘은 이 이갸기를 풀어 보겠습니다.


샤프란의 역사와 샤프란 전쟁을 표현한 붉은 샤프란 향신료와 중세 유럽
금보다 귀했던 샤프란에 얽힌 중세 유럽의 역사와 시대상황을 표현


1. 꽃 한 송이에서 겨우 세 가닥, 샤프란 가격의 비밀

샤프란이 왜 이렇게 말도 안 되게 비싼지 찾아보고는 정말 입이 떡 벌어졌습니다. 샤프란은 가을에 피는 크로커스 꽃의 붉은 암술대를 말린 것인데, 이 암술대는 꽃 한 송이당 딱 세 가닥만 나옵니다. 게다가 꽃이 피는 시기도 일 년 중 겨우 2주 남짓인데, 기계로는 절대 채취할 수 없고 사람이 일일이 손으로 정성스럽게 떼어내야 한다더라고요.

샤프란 1kg을 얻으려면 무려 15만 송이의 꽃을 손으로 따야 한다고 합니다 (출처: 식물 잔혹사). 지나고 보면 참 씁쓸하면서도 감탄이 나오는 대목입니다. 지금 우리 밥상에서는 그냥 예쁜 색을 내는 향신료 정도로 가볍게 떠올리지만, 그 한 가닥에는 수많은 사람의 시력과 손마디를 바꾼 지독한 노동이 담겨 있답니다.

실제 샤프란 수확은 보기보다 훨씬 고된 일이었습니다. 꽃이 피면 허리를 숙이고 쪼그려 앉아 하나하나 손으로 따야 했고, 수확한 꽃에서는 다시 가느다란 붉은 암술을 일일이 골라내야 했습니다. 수없이 같은 동작을 반복하다 보니 손목과 무릎, 허리에 부담이 쌓일 수밖에 없었겠지요. 지금도 샤프란 수확 노동자들을 조사한 연구에서 수확철이 지나면서 손목과 무릎 등의 불편이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이 사실을 알고 나니 샤프란의 높은 가격이 조금은 다르게 보였습니다. 작은 병 속에 담긴 붉은 실 몇 가닥의 값이라기보다, 꽃밭에서 허리를 굽히고 수많은 꽃을 만졌던 사람들의 시간과 손끝에 매겨진 값이라고 생각하면 그 비싼 가격도 조금은 이해가 됩니다.

2. 가짜 샤프란을 팔면 화형? 14세기 향신료 범죄와 처벌

다시 돌아와서, 상황이 이렇다 보니, 중세 유럽에서는 샤프란이 단순한 양념이 아니라 부와 권력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왕족과 귀족들은 자신의 권세를 자랑하기 위해 연회 음식마다 샤프란을 팍팍 넣어 노란빛으로 도배를 했답니다.

돈이 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가짜 샤프란'이 판을 치기 시작했어요. 말린 홍화나 엉겅퀴, 심지어 노랗게 물들인 실을 섞어 파는 사기꾼들이 넘쳐났죠. 그러자 14세기 독일 뉘른베르크에서는 가짜 샤프란을 만들거나 섞어 파는 업자를 처벌하기 위해 '샤프란 법(Safranschau)'까지 만들었습니다. 잡히면 가짜 샤프란과 함께 불에 타 죽는 화형에 처해지거나 산 채로 매장당했다고 해요 (출처: 향신료의 세계사). 

지금은 향신료에 다른 재료를 조금 섞어 팔았다고 사람의 목숨까지 빼앗는다는 것이 쉽게 상상되지 않습니다. 그만큼 당시 샤프란의 가치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이기도 하겠지요. 작은 붉은 실 몇 가닥을 지키기 위해 법을 만들고 목숨까지 걸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샤프란이 단순히 ‘비싼 향신료’였다는 말만으로는 그 시대의 분위기를 다 설명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 향신료 한 자루가 부른 전쟁, 샤프란 전쟁

심지어 1374년에는 샤프란을 실은 수송선이 약탈당하면서 이른바 ‘샤프란 전쟁’까지 벌어졌다고 합니다. 이야기를 알고 나니 묘하게 허망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결국 꽃 한 송이에서 떼어낸 가느다란 암술 몇 가닥일 뿐인데, 그것을 차지하기 위해 사람들이 칼을 들고 목숨까지 잃었다니 말이죠. 지금 손바닥 위에 올려놓으면 바람 한 번에도 날아가 버릴 것 같은 작은 샤프란이 한때는 사람들의 목숨보다 귀하게 여겨졌다는 사실이 참 아이러니하게 느껴집니다.

이제 샤프란을 맛볼 때 들게 되는 생각들

이 거대한 역사를 알고 나니 찬장 속에 얌전히 놓여있던 샤프란이 달라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 이전에는 그저 '색이 예쁜 비싼 재료'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이제는 붉은 가닥 하나를 물에 띄울 때마다 중세 귀족들의 사치와 해적들의 칼부림, 그리고 꽃밭에서 손가락이 터져라 일했던 민중들의 한숨이 떠오를 것 같습니다.

혹시 여러분도 나중에 파에야나 리조또 같은 요리에서 영롱한 노란 빛깔을 보시게 된다면, 잠시 14세기 유럽으로 시간 여행을 떠나보시는 건 어떨까요? 그 붉은 가닥 하나에 담긴 중세인들의 뜨거운 욕망을 떠올려보면서 말이죠.


오늘 '밥상 위의 세계사'에서는 황금보다 비싼 향신료, 샤프란의 숨겨진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습니다. 우리가 무심코 접하는 식재료 하나에도 이처럼 거대한 인류의 욕망과 비화가 숨어있다는 게 언제나 참 흥미로운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은 요리를 하거나 음식을 드실 때, 그 재료에 담긴 역사나 비화에 대해 생각해 보신 적이 있나요? 혹시 나만 알고 있는 흥미진진한 음식이 있다면 댓글로 편하게 나누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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