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마트에서 감자 한 봉지를 아무 생각 없이 장바구니에 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흔하고 투박한 뿌리채소가 한때는 '악마의 음식'이라 불리며 사람들에게 외면당했었다는 사실을 아는 분이 얼마나 될까요?
삶아서 소금 찍어 먹어도 맛있고, 볶음이나 조림 전으로 부쳐 먹어도 든든한 이 평범한 감자에게 그렇게 거창한 별명이 붙었던 시절이 있었다니, 처음 알았을 때는 저도 조금 웃음이 났습니다. 그런데 그 뒷이야기를 하나씩 따라가다 보니, 웃음보다는 감탄과 안타까움이 더 크게 남더라고요. 감자는 유럽 사람들의 굶주림을 구한 은인이 되기도 했고, 동시에 한 나라를 통째로 무너뜨린 비극의 원인이 되기도 했으니까요.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드릴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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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데스에서 시작해 유럽의 구황작물이 되고 우주까지 향한 감자의 파란만장한 역사를 표현 |
1. 안데스의 냉동고, 감자가 태어난 곳
감자의 원래 고향은 유럽이 아니라 남아메리카의 안데스 고원입니다. 지금의 페루와 볼리비아에 걸쳐 있는 티티카카호 주변에서는 약 8,000년 전부터 사람들이 감자를 재배해 먹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지금도 그 지역에는 색깔도 모양도 제각각인 수천 종의 토종 감자가 남아 있다고 하니, 우리가 아는 감자는 그중 정말 극히 일부인 셈이죠.
더 놀라운 건 잉카인들의 저장 기술입니다. 안데스의 밤은 영하로 떨어질 만큼 춥고 낮에는 자외선이 강한데, 잉카인들은 이 극단적인 기후를 오히려 이용했습니다. 감자를 밤에 얼렸다가 낮에 밟아서 물기를 짜내는 과정을 며칠 반복해서 '추뇨(chuño)'라는 냉동건조 감자를 만든 것입니다. 이렇게 만든 추뇨는 놀랍게도 몇 년, 심지어 몇십 년을 두고도 상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냉장고도 없던 시절, 사람들이 이미 자연을 이용한 나름의 '동결건조 기술'을 갖고 있었다는 게 정말 놀라운 일이죠.
2. 유럽에 상륙한 낯선 뿌리, 왜 '악마의 음식'이 되었을까
16세기, 남아메리카에 도착한 스페인 사람들이 감자를 유럽으로 가져가면서 감자의 운명이 완전히 바뀌게 되는데요. 하지만 유럽 사람들은 이 낯선 작물을 그리 반기지 않았습니다.
땅속에서 울퉁불퉁하게 자라는 모습부터 낯설었고, 성경에 등장하지 않는 식물이라는 이유로 불경하다는 인식까지 더해졌습니다. 여기에는 나름의 근거도 있었습니다. 감자는 가지, 토마토와 같은 가짓과 식물인데, 감자의 잎과 열매, 싹에는 실제로 솔라닌이라는 독성 물질이 들어있습니다. 당시 사람들이 감자의 초록빛 열매나 잎을 먹고 탈이 난 경우가 있었을 텐데, 이런 경험이 '감자는 위험한 식물'이라는 소문으로 번지는 데 한몫했을 거라 짐작해 봅니다. 정작 먹어야 하는 부위는 땅속의 덩이줄기였는데 말이죠.
3. 감자를 명품으로 둔갑시킨 두 남자의 홍보 전략
프랑스에서 감자의 이미지를 바꾼 인물로는 약사 앙투안 오귀스탱 파르망티에가 유명합니다. 7년 전쟁 당시 프로이센군의 포로가 되어 감자로 끼니를 이어가던 그는, 프랑스로 돌아온 뒤 상류층을 초대해 감자 요리를 대접하고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감자꽃을 선물했다고 전해집니다. 가난한 사람들의 음식이라는 이미지를 벗겨내고, 왕과 귀족도 관심을 갖는 세련된 식재료로 감자를 다시 포장한 셈입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짓궂은 전략을 쓴 인물도 있습니다.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대왕입니다. 그는 농민들에게 감자를 심으라고 명령했지만 다들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자, 아예 방법을 바꾸었습니다. 왕실 소유의 감자밭에 병사들을 배치해 낮 동안 삼엄하게 지키게 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밤에는 슬쩍 감시를 풀어두었다고 합니다. "저렇게 지킬 정도면 귀한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한 농민들이 밤마다 몰래 감자를 캐가기 시작했고, 그렇게 감자는 프로이센 전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먹으라고 나눠줄 때는 거부하던 사람들이, 몰래 훔쳐서라도 가져가려고 오히려 앞다투어 손을 댄 셈이니, 사람 마음이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4. 땅속의 감자가 유럽의 인구를 끌어올리다
이런 우여곡절을 거치며 감자의 장점이 알려지자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감자는 좁은 땅에서도 곡물보다 훨씬 많은 열량을 얻을 수 있었고, 전쟁으로 밭이 짓밟혀도 땅속에 묻힌 감자만큼은 살아남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무엇보다 만성적인 굶주림에 시달리던 유럽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감자는 든든한 한 끼가 되어주었습니다.
실제로 역사학자들은 18~19세기 유럽의 인구가 크게 늘어난 배경으로 감자의 보급을 중요하게 꼽습니다. 화려한 향신료도 아니고 귀족들이 자랑할 만한 진귀한 재료도 아니었지만, 정작 굶주린 사람들을 살린 것은 흙 묻은 감자 한 알이었습니다.
5. 감자에 모든 것을 건 나라, 그리고 찾아온 재앙
하지만 감자의 역사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19세기 아일랜드에서는 가난한 농민들의 식생활이 감자 하나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구조로 굳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던 1845년, '감자 역병(Phytophthora infestans)'이라는 곰팡이균이 아일랜드 전역의 감자밭을 덮치기 시작했습니다.
흥미롭게도 이 병원균의 고향은 감자의 원산지인 남아메리카가 아니라 멕시코 지역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감자가 세계를 돌아다니는 사이, 병원균도 함께 세계를 돌아다니다가 하필 감자에 모든 것을 건 아일랜드에서 최악의 결과를 낸 셈인데요.
이후 몇 년간 이어진 '아일랜드 대기근'으로 약 100만 명이 굶주림과 관련 질병으로 목숨을 잃었고, 또 다른 100만 명 이상이 살길을 찾아 고향을 등졌습니다. 이 시기 아일랜드를 떠난 이민자들이 미국 등지에 정착하며 오늘날 아일랜드계 인구가 세계 곳곳에 퍼지게 된 배경이 되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 참사를 단순히 '감자병 때문'이라고만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당시 아일랜드의 불평등한 토지 소유 구조와 영국의 통치 정책, 굶주리는 동안에도 계속되던 식량 수출 등 여러 문제가 겹치며 피해를 키웠기 때문입니다. 감자밭의 병이 비극의 불씨였다면, 그 불씨를 거대한 참사로 키운 것은 결국 그 시대의 사회구조 였던 것이죠.
6. 감자, 이번에는 우주로 향하다
땅속에서 시작된 감자의 여정은 놀랍게도 우주까지 이어집니다. 1995년, 미국 항공우주국(NASA)과 위스콘신 대학 연구팀은 우주왕복선 컬럼비아호에 감자를 실어 보내 재배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인류가 우주에서 재배에 성공한 최초의 채소로 감자가 기록된 순간입니다.
좁은 공간에서도 잘 자라고, 열량 대비 재배 효율이 높다는 감자의 오랜 장점이 이번에는 '장기 우주 임무를 떠나는 인류의 식량'이라는 새로운 역할로 이어진 셈입니다. 안데스의 척박한 고원에서 살아남기 위해 강인해진 이 작물이, 수백 년의 시간을 건너 언젠가 화성에서도 사람들의 식탁에 오를 후보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는 사실이 꽤 낭만적으로 느껴집니다.
이 평범한 뿌리채소를 다시 보게 되는 이유
감자의 역사를 알고 나니 마트에 쌓여 있는 감자 한 봉지가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안데스의 고원에서 수천 년을 이어온 작물이 대서양을 건너 유럽에 도착했고, 처음에는 의심과 외면을 받았지만 결국 수많은 사람의 굶주림을 구했습니다. 그러나 그 감자에 삶 전체를 의지했던 한 나라는 감자밭의 병 앞에서 처참하게 무너지기도 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중요했던 것은 감자 그 자체가 아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 작은 뿌리 하나에 삶을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그 시대 사람들의 가난과, 그런 상황을 만들고 방관했던 사회의 모습까지 함께 들여다봐야 비로소 감자의 역사가 온전히 보이는 것 같습니다.
오늘 '밥상 위의 세계사'에서는 너무 흔해서 별생각 없이 지나쳤던 감자 한 알의 긴 여정을 따라가 보았습니다. 안데스의 고원에서 시작해 대서양을 건너고, 유럽 사람들의 의심과 오해를 견디고, 마침내 수많은 사람의 배를 채우고, 이제는 우주로까지 향하고 있는 감자 말이죠.
오늘 저녁 식탁에 감자볶음이나 감자전이 올라온다면, 한 번쯤 이 뿌리채소가 지나온 길을 떠올려 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몇 천 원이면 살 수 있는 평범한 식재료지만, 누군가에게는 가족을 살린 고마운 식량이었고, 또 누군가에게는 고향을 등질 수밖에 없었던 슬픈 역사의 한가운데에 있던 존재였으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