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개나 나물 무침 맛이 뭔가 아쉬울 때, 저는 습관처럼 액젓 한 스푼을 슬쩍 더합니다. 신기하게도 그 한 스푼이면 밍밍하던 맛이 감칠맛이 돌면서 확 살아나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생선을 발효시켜 감칠맛을 더하는 습관이, 무려 2,000년 전 로마 제국에서도 이미 일상이었다는 사실을 얼마 전에야 알게 됐습니다.
그 이름은 가룸(Garum)인데요.
처음 제조법을 읽었을 때 솔직히 식욕보다는 의문이 먼저 들었습니다. 생선과 내장을 소금에 절여 발효시킨 뒤 흘러나오는 액체를 걸러 조미료로 썼다니, 언뜻 들으면 그냥 상한 생선물처럼 느껴지니까요. 그런데 이 소스는 로마에서 괴상한 별미가 아니라 어디에나 있는 필수 조미료였고, 심지어 로마 곳곳에 이걸 만드는 대형 공장까지 있었으며, 최고급 제품은 웬만한 사람은 손도 못 댈 만큼 비쌌습니다. 대체 로마인들은 왜 이 강렬한 생선 소스에 그토록 열광했을까요? 오늘 함께 과거로의 여행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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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 로마인의 만능 조미료였던 발효 생선 소스 가룸의 역사 |
1. 그리스의 생선 소스가 로마의 국민 조미료가 되기까지
가룸의 뿌리는 로마보다 앞서 존재했습니다. 고대 그리스에서도 작은 생선을 소금에 절여 만든 '가로스(garos)'라는 소스가 쓰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고, 이를 로마인들이 물려받아 여러 형태로 발전시켰습니다.
만드는 과정은 좀 낯설게 들립니다. 특히 최상급 가룸을 만들 때 로마인들이 선호했던 생선은 다름 아닌 고등어였습니다. 실제로 플리니우스의 기록에도 고등어는 최고급 가룸의 재료로 언급됩니다. 여기에 정어리나 참치 같은 등푸른 생선의 내장과 피, 머리까지 통째로 다량의 소금과 섞어 햇볕 아래에서 발효시켰습니다. 시간이 지나며 조직이 분해되면서 위쪽에 맑은 액체가 고이는데, 이걸 걸러낸 것이 바로 가룸입니다.
어찌보면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액젓 만드는 방식과 거의 비슷하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쓰인 생선 종류는 서로 다릅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멸치액젓이나 까나리액젓은 이름 그대로 몸집이 작은 멸치나 까나리를 통째로 발효시켜 만듭니다. 반면 로마의 가룸은 고등어처럼 상대적으로 몸집이 크고 기름진 생선의 내장과 피를 활용하는 경우가 많았지요. 즉 '생선을 발효시켜 액체를 걸러 쓴다'는 큰 틀은 같아도, 정작 어떤 생선의 어느 부위를 썼는지는 꽤 다른 셈입니다.
글로만 보면 항구의 비린내가 떠오르지만, 사실 우리에게도 낯선 방식은 아닙니다. 멸치액젓이나 까나리액젓도 결국 생선과 소금, 그리고 시간이 만들어내는 감칠맛이니까요. 2,000년의 시차를 두고도 사람이 맛을 만드는 방식은 크게 다르지 않았던 셈입니다.
2. 국물 요리부터 디저트까지, 로마인들의 만능 조미료
더 흥미로운 건 사용 범위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간장이나 소금을 온갖 요리에 두루 쓰듯, 로마인들도 가룸을 거의 모든 음식에 활용했습니다.
고대 로마 요리책 『아피키우스』에는 생선 소스가 등장하는 요리법이 수백 건에 달합니다. 고기와 채소는 물론, 놀랍게도 단맛이 나는 디저트에까지 가룸이 들어간 사례가 전해집니다. 여기에 포도주를 섞은 오이노가룸, 식초를 더한 옥시가룸처럼 응용 버전도 다양했습니다.
'생선 비린내 나는 소스를 디저트에까지?' 싶다가도, 액젓을 떠올리면 금방 이해가 됩니다. 잘 숙성된 액젓은 생선 맛보다 짠맛과 감칠맛이 음식 전체에 은은하게 스며드는 쪽에 가깝거든요. 로마인들이 사랑했던 것도 바로 그 은은한 감칠맛이었을 겁니다.
3. 시인마저 반한 명품 소스, 그리고 만병통치약이라는 소문
여기서 가장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가룸이라고 다 같은 가룸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사용한 생선과 제조법에 따라 등급이 갈렸고, 그중에서도 스페인 카르타헤나·카디스 일대에서 만들어진 '가룸 소키오룸(garum sociorum)'은 최고급 명품으로 명성이 자자했습니다. 박물학자 플리니우스의 기록을 근거로 계산하면, 이 최상급 가룸은 당시 빵 약 2,000개 값에 맞먹었다고 합니다.
이 소스의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로마의 풍자시인 마르티알리스는 자신의 시에서 값비싼 가룸을 선물로 언급하며 은근히 부러움과 위트를 담아내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당시 의사들은 가룸을 개에 물린 상처나 피부병, 소화불량 등에 바르거나 먹는 만병통치약처럼 처방하기도 했다고 전해집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다소 황당하지만, 그만큼 가룸이 로마인의 삶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생선 내장으로 만든 소스가 명품이자 약이라니, 얼핏 우스워 보여도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같은 간장에도 오래 숙성된 프리미엄 제품이 있고, 발사믹 식초나 치즈도 산지와 숙성 기간에 따라 값이 천차만별이니까요. 사람들은 2,000년 전에도 평범한 재료 속에서 '더 좋은 한 끗'을 찾아 기꺼이 지갑을 열었던 셈입니다.
4. 맑은 소스는 부자에게, 찌꺼기는 서민에게
가룸 이야기에는 씁쓸한 대목도 있습니다. 생선을 발효시켜 액체를 걸러내고 나면, 바닥에는 뼈와 살점이 섞인 걸쭉한 찌꺼기가 남았습니다. 이를 '알렉(allec)'이라 불렀는데, 맑은 최고급 가룸과 달리 페이스트에 가까운 저렴한 음식으로 소비됐습니다.
같은 항아리에서 나왔지만 위쪽의 맑은 액체는 귀한 상품이 되고, 밑바닥의 찌꺼기는 서민의 끼니가 된 것입니다. 이 대목을 알고 나니 가룸 항아리 하나에도 당시 로마 사회의 빈부 구조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누군가는 최고급 가룸으로 부를 과시했고, 누군가는 그 부산물로 하루를 버텼을 테니까요.
5. 냄새나는 산업, 그러나 거대했던 가룸 공장
가룸은 집에서 조금씩 담가 먹는 수준의 음식이 아니었습니다. 로마 제국 곳곳, 특히 오늘날의 스페인과 포르투갈, 프랑스 남부, 북아프리카 지역에는 생선 소스를 대량 생산하는 시설이 있었습니다. 현재 모로코의 고대 도시 릭수스에서 발견된 염장 시설들만 해도 전체 규모가 100만 리터가 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쯤 되면 '로마인들이 가룸을 좋아했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합니다. 하나의 거대한 식품 산업이었던 셈이죠. 다만 그 대가로 누군가는 늘 항구 근처를 떠도는 지독한 발효 생선 냄새를 견뎌야 했습니다. 실제로 냄새 문제로 생산이 일시 제한되었다는 기록도 남아 있습니다.
6. 화산재 속에 갇힌 2,000년 전의 주방
가룸 이야기가 더욱 흥미로운 이유는, 이 소스가 단순히 옛 문헌 속에만 남아 있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서기 79년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통째로 묻혀버린 폼페이에서는 연구자들이 '가룸 상점'이라 부르는 장소가 발견됐고, 그 안에는 당시 생선 소스를 만들던 대형 저장 용기와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습니다.
화산이 도시를 순식간에 뒤덮으면서, 로마인의 식품 작업장 하나가 그대로 시간 속에 봉인된 것입니다. 실제로 스페인 카디스 대학 연구팀 등은 이 잔여물을 분석하고 고대 문헌 속 제조법을 참고해 2,000년 전 가룸의 맛을 실제로 재현하는 실험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그날 항아리 앞에서 일하던 누군가는, 자신이 만든 소스가 2,000년 뒤 연구실에서 재현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겠지요.
7. "그거 그냥 액젓 아니야?" 라는 질문에 대한 답
여기까지 읽으신 분들 중에는 아마 이런 생각이 드셨을 겁니다.
'생선을 소금에 절여 발효시켜서 액체를 걸러 쓴다고? 그거 완전 액젓 아니야?'
정확한 지적입니다. 생선과 소금, 그리고 시간이 만나 감칠맛을 만든다는 기본 원리로만 보면 가룸과 우리에게 익숙한 멸치액젓, 까나리액젓은 사실상 같은 음식이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서양 음식사 연구자들도 가룸을 설명할 때 종종 동남아시아의 피시소스나 동아시아의 액젓을 예로 들어 비교할 정도니까요.
그런데 여기서 진짜 흥미로운 반전이 하나 있습니다.
가룸과 한국의 액젓은 서로 아무런 연결고리 없이, 지구 반대편에서 완전히 독립적으로 탄생한 소스입니다. 로마인이 액젓 만드는 법을 전수해 준 것도, 우리 조상이 로마의 제조법을 수입해 온 것도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런데도 두 문명은 똑같이 "생선 + 소금 + 시간"이라는 답에 각자 도달했습니다. 사람이 감칠맛을 찾아가는 방식은 언어도 대륙도 뛰어넘어 결국 비슷한 곳으로 수렴한다는 사실이, 저는 이 이야기에서 가장 놀라운 대목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가룸의 진짜 '직계 후손'은 어디에 있을까요? 놀랍게도 정답은 한국이 아니라 이탈리아입니다. 이제 곧 소개해 드릴 아말피 해안의 콜라투라 디 알리치는 단순히 원리가 닮은 정도가 아니라, 지역적으로도 기술적으로도 로마 시대의 제조법을 그대로 물려받았을 가능성이 높은 소스입니다. 즉 액젓은 가룸과 '같은 아이디어에 따로 도달한 먼 친척'이라면, 콜라투라 디 알리치는 '한 번도 끊긴 적 없는 직계 자손'에 가까운 셈입니다.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액젓이 사실은 로마의 가룸과 혈연관계가 아니라 그저 닮은꼴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진짜 혈통은 엉뚱하게도 이탈리아의 작은 어촌 마을에 남아 있었다는 사실. 이 두 가지가 이번 가룸 이야기에서 제가 가장 소름 돋았던 지점입니다.
8. 사라진 줄 알았던 가룸, 지금도 어촌 마을에 살아있다
로마 제국이 흔들리면서 무역망이 끊기고, 가룸 산업도 예전의 규모를 잃어갔습니다. 서유럽에서는 가룸 문화가 크게 쇠퇴했지만, 비잔틴 지역에서는 그 명맥이 더 오래 이어졌다고 전해집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가룸의 흔적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탈리아 남부 아말피 해안의 작은 어촌 마을 체타라(Cetara)에서는 지금도 멸치를 소금에 절여 나무통에서 오랫동안 숙성시킨 뒤 맑은 액체를 걸러내는 '콜라투라 디 알리치(colatura di alici)'라는 소스를 만들고 있습니다. 제조 방식이 옛 가룸과 놀랍도록 닮아 있어, 많은 음식사학자들은 이를 가룸의 살아있는 후손으로 봅니다. 심지어 영국의 대표 소스인 우스터소스 역시 발효시킨 멸치를 베이스로 만든다는 점에서, 우리가 스테이크에 뿌려 먹는 그 소스 뒤에도 로마 가룸의 그림자가 은은하게 남아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보면 제국은 무너지고 황제의 궁전은 폐허가 되었어도, 생선과 소금으로 감칠맛을 만들어내던 인간의 지혜만큼은 세계 곳곳의 주방에서 조용히 살아남은 셈입니다.
이 오래된 항아리 하나가 남긴 것
오늘 '밥상 위의 세계사'에서는 고대 로마인의 식탁을 지배했던 발효 생선 소스, 가룸의 이야기를 따라가 보았습니다. 대량 생산 공장이 있었고, 부유층이 찾던 명품 브랜드가 있었으며, 시인이 시로 예찬하고 의사가 약으로 처방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찌꺼기조차 누군가의 소중한 끼니가 되었습니다. 화산재 아래 묻힌 항아리는 2,000년이 지난 오늘까지 그 시절의 식탁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고요.
다음에 찌개나 나물에 액젓을 한 스푼 넣다가 특유의 향이 훅 올라온다면, 잠시 폼페이의 어느 가룸 상점을 떠올려 보셔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언어도, 옷차림도, 살아가는 방식도 전혀 달랐던 사람들이지만, 음식에 감칠맛 한 끗을 더하고 싶었던 마음만큼은 지금의 우리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던 것 같으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