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에 김치가 없으면 어쩐지 허전합니다.
국을 끓이고 고기를 구워도, 새콤하고 아삭한 김치 한 접시가 식탁에 없으면 뭔가 빠진 느낌이 듭니다. 우리는 밥상 위에 항상 발효 채소가 놓여 있는 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지구 반대편, 대항해시대의 유럽 배 위에서는 이 당연함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몇 달씩 육지를 보지 못하고 바다를 떠도는 선원들의 식탁에는 소금에 절인 고기와 딱딱하게 마른 비스킷뿐, 신선한 채소나 과일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빈자리는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잇몸이 붓고 이가 흔들리며, 오래전 아물었던 상처가 다시 벌어지고, 결국에는 걷지도 못하게 되는 병. 바로 괴혈병이었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병을 막을 방법이 이미 뻔히 눈앞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류는 그 답을 인식하고도 반세기 가까이 제대로 쓰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밥상에서 아무렇지 않게 곁들이는 새콤한 반찬 한 접시가, 누군가에게는 목숨을 가르는 문제였다는 이야기를 오늘 따라가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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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몬과 라임이 괴혈병을 막고 영국 해군의 장거리 항해를 도운 역사를 표현한 썸네일. |
1. 눈에 보이지 않는 적이 대포보다 무서웠다
15세기부터 18세기까지 이어진 대항해시대, 배에 실을 수 있는 식량에는 치명적인 한계가 있었습니다.
냉장고도 냉동고도 없던 시절이니 몇 달을 버티려면 소금에 절인 고기, 말린 콩, 딱딱한 비스킷처럼 잘 상하지 않는 음식 위주로 실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문제는 신선한 채소와 과일이었습니다. 출항할 때 조금 싣더라도 얼마 지나지 않아 곰팡이가 슬거나 썩어버렸습니다.
그렇게 몇 달을 신선한 채소 없이 버틴 선원들의 몸속에서는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 비타민C가 서서히 고갈되고 있었습니다. 비타민C는 우리 몸이 콜라겐을 만드는 데 꼭 필요한 물질이고, 부족해지면 혈관과 잇몸, 피부 조직이 약해지며 출혈과 상처 회복 장애가 나타납니다.
하지만 당시 사람들은 비타민이라는 개념 자체를 몰랐습니다. 원인을 두고 오염된 공기 때문이라는 사람도, 습한 기운 때문이라는 사람도, 심지어 게으름이나 우울한 마음 탓이라 믿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정답은 식탁 위에 있었지만, 아무도 그 이유를 알지 못했습니다.
2. 배 한 척에서 열 명 중 일곱 명이 사라졌다
괴혈병이 얼마나 무서운 병이었는지 보여주는 유명한 기록이 있습니다.
1740년, 영국 해군 제독 조지 앤슨이 이끄는 함대가 세계 일주 항해에 나섰습니다. 이 항해에서 진짜 무서운 적은 전투가 아니라 질병이었습니다. 한 선박의 510명의 승조원 중 적어도 380명이 항해 도중 목숨을 잃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대포 한 발 맞지 않고도 배 안의 사람들이 하나둘 쓰러져 갔다는 뜻입니다. 당시 영국 왕립해군에서는 실제로 전투보다 질병으로 죽는 선원이 더 많았습니다. 배를 아무리 튼튼하게 지어도 그 배를 움직일 사람이 질병으로 쓰러진다면 해군력은 유지될 수 없었습니다. 괴혈병은 단순한 질병이 아니라 국가의 군사력을 통째로 갉아먹는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3. 1747년, 배 위의 이상한 실험
1747년 5월 20일, 영국 해군 군의관이었던 스코틀랜드 출신 의사 제임스 린드는 HMS 솔즈베리호에서 괴혈병에 걸린 선원 12명을 모아 두 명씩 여섯 그룹으로 나누었습니다.
기본 식사는 비슷하게 유지하되, 그룹마다 당시 괴혈병에 좋다고 알려진 서로 다른 치료법을 시험했습니다. 어떤 그룹에는 사이다를, 어떤 그룹에는 식초를 주었고, 바닷물을 마시게 하거나 당시 통용되던 약물을 투여한 그룹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 그룹에는 매일 오렌지 두 개와 레몬 한 개를 주었습니다.
결과는 명확했습니다. 감귤류를 먹은 두 선원의 몸 상태가 눈에 띄게 빠르게 좋아졌습니다. 며칠 만에 과일이 떨어져 치료를 계속하지 못했는데도, 한 사람은 곧 근무에 복귀할 만큼, 다른 한 사람은 다른 환자를 돌볼 만큼 회복했습니다.
오늘날 이 실험은 초기 형태의 비교 임상시험 사례로 의학사에 자주 언급 되기도합니다. 정답을 찾은 것처럼 보였지만 여기서부터 이야기가 이상하게 흘러갑니다.
4. 정답을 알고도 48년을 흘려보낸 이유
린드의 실험은 1747년에 이루어졌지만, 영국 해군이 레몬즙을 본격적으로 지급하기 시작한 것은 1795년입니다. 거의 반세기가 흘렀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왜 감귤류가 효과가 있는지 아무도 몰랐다는 데 있습니다. 비타민C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으니 결과는 보였지만 원리는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린드 자신조차 괴혈병의 정확한 원인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여기에 현실적인 문제도 겹쳤습니다. 싱싱한 레몬과 오렌지를 몇 달씩 배에 싣고 다니는 것 자체가 어려웠습니다. 린드는 과일즙을 가열해 농축한 이른바 '롭(rob)'이라는 형태를 대안으로 제안했지만, 비타민C는 열에 약해서 오래 가열하면 효과가 크게 떨어집니다. 결국 사람들은 다시 혼란에 빠졌습니다. 분명 생과일을 먹었더니 나았는데, 가공한 과일즙은 효과가 시원찮았던 것입니다. 정답을 발견하고도, 그 이유를 몰랐기에 정답을 놓쳐버린 셈입니다.
5. 19주 동안 항구 없이 버틴 함대
결정적인 전환점은 1790년대에 찾아옵니다.
해군 의사 길버트 블레인을 비롯한 이들이 감귤류의 효과를 계속 주장했고, 1793년에는 레몬즙을 충분히 준비한 함대가 약 19주 동안 항구에 들르지 않고 마드라스까지 항해했는데도 괴혈병 없이 도착하는 사례가 나왔습니다.
이 결과는 강력한 근거가 되었고, 블레인은 결국 해군 당국을 설득해 1795년 영국 해군은 레몬즙 지급을 대폭 확대했습니다. 효과는 빠르게 나타났습니다. 1797년에는 해군병원을 방문한 해군성 최고 책임자가 괴혈병 환자를 보여달라고 했지만 찾지 못했다는 일화가 전해질 정도였고, 나폴레옹 전쟁 말기에는 괴혈병이 영국 함대에서 거의 사라졌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수백 년간 선원들을 쓰러뜨리던 병이, 과일즙 하나로 물러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6. 사실은 레몬보다 먼저 발효채소를 먹인 선장이 있었다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짚고 넘어갈 만합니다. 영국 해군이 공식적으로 레몬즙을 채택하기 훨씬 전, 이미 경험적으로 답에 가까이 다가간 인물이 있었습니다.
바로 태평양 탐험가로 유명한 제임스 쿡 선장입니다. 그는 1768년부터 이어진 항해에서 선원들에게 양배추를 발효시킨 사우어크라우트를 정기적으로 먹였습니다. 처음에는 선원들이 낯선 음식을 꺼려했지만, 쿡은 장교들에게 먼저 먹는 모습을 보여주며 선원들이 따라 먹도록 유도했다고 전해집니다. 그 결과 쿡의 항해에서는 괴혈병으로 인한 사망자가 눈에 띄게 적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발효 채소로 병을 막았다는 발상이, 우리에게는 그리 낯설지 않다는 것입니다. 소금에 절이고 발효시킨 채소를 오래 저장해 두고 겨우내 꺼내 먹는 습관. 우리나라의 김장 문화와 본질적으로 닮은 방식입니다. 물론 조선의 수군은 대개 연안을 오가는 항해였기에 유럽처럼 몇 달씩 육지를 못 보는 상황은 드물었지만, 배를 타고 오래 나가는 어부나 상인들도 절임 반찬과 장아찌를 항상 챙겼습니다. 발효 채소가 괴혈병을 막아준다는 사실을 몰랐을 뿐, 우리 조상들도 비슷한 지혜를 밥상 위에 이미 쌓아 올리고 있었던 셈입니다.
7. 레몬이 대영제국을 만들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여기서부터 괴혈병 이야기는 단순한 의학사를 넘어 세계사와 이어집니다.
범선 시대 해군에게 가장 중요한 능력 하나는 얼마나 오래 바다에 머물 수 있느냐였습니다. 항구에 자주 들러 신선한 식량을 채워야 한다면 함대의 작전 범위는 한계에 부딪힙니다. 반대로 선원들이 장기간 건강하게 버틸 수 있다면, 적의 항구를 오래 봉쇄할 수도, 먼 식민지까지 안정적으로 오갈 수도, 장기간 작전을 지속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레몬 덕분에 대영제국이 만들어졌다"고 하면 지나친 과장입니다. 영국의 해양 패권에는 조선 기술, 금융, 무역망, 산업력, 군사 조직 등 훨씬 많은 요인이 얽혀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군함이 있어도 그 배를 움직일 선원이 쓰러진다면 소용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레몬즙은 눈에 보이는 대포나 돛은 아니었지만, 영국 해군이 장거리 작전을 지속하게 해 준 중요한 보급품이었습니다.
8. 정작 유명해진 건 레몬이 아니라 라임이었다
여기서 재미있는 반전이 하나 있습니다.
지금도 영국 사람을 가리켜 쓰이는 별명이 있습니다. '라이미(Limey)'입니다. 영국 선원들이 괴혈병을 막기 위해 라임을 먹었다는 데서 나온 표현입니다.
그런데 정작 초기 영국 해군이 괴혈병 퇴치에 사용한 핵심 감귤은 레몬이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며 영국은 자국 식민지였던 서인도제도에서 생산되는 라임을 활용하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영국 선원과 라임의 이미지가 강하게 굳어졌습니다. 정작 역사의 전환점에는 레몬이 있었는데, 후대에 남은 별명은 '레몬맨'이 아니라 '라이미'가 된 셈입니다. 음식의 역사에는 이렇게 엉뚱한 흔적이 종종 남습니다.
9. 비타민C라는 이름 자체가 '괴혈병 없음'이라는 뜻이다
한 가지 더 흥미로운 사실이 있습니다. 비타민C의 화학명은 아스코르브산(ascorbic acid)인데, 이 단어 자체가 '괴혈병이 없다'는 뜻에서 나왔습니다.
'a-'는 부정을 뜻하는 접두사이고, 'scorbutus'는 라틴어로 괴혈병을 가리킵니다. 즉 이 물질의 이름은 그 자체로 "괴혈병을 막는 물질"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셈입니다. 정작 이 이름이 붙은 것은 1930년대에 헝가리 과학자 얼베르트 센트죄르지 등이 비타민C를 분리해 정체를 밝혀낸 뒤였습니다. 린드의 실험으로부터 거의 200년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왜 레몬이 효과가 있었는지" 그 원리가 완전히 밝혀진 것입니다.
경험적으로 답을 알고 있었지만, 과학적으로 그 이유를 이해하기까지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사실이 새삼스럽습니다.
10.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먹는 반찬 한 접시의 무게
지금 우리는 레몬 하나를 마트에서 천 원이면 살 수 있고, 생선 요리에 뿌리거나 차에 띄워 마십니다. 김치나 장아찌도 밥상마다 당연하게 올라옵니다.
하지만 18세기 배 위에서 레몬은 전혀 다른 의미였습니다. 잇몸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져가던 선원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약이었고, 몇 달씩 바다에서 작전을 수행해야 하는 함대에는 전략적인 보급품이었습니다.
더 흥미로운 것은, 인류가 이미 정답을 손에 쥐고 있으면서도 그 이유를 몰라 수십 년 동안 헤맸다는 사실입니다. 1747년 린드의 작은 실험과 1795년 영국 해군의 정식 지급 사이에는 거의 반세기라는 시간이 놓여 있었고, 그동안 수많은 선원이 괴혈병으로 계속 고통받았습니다.
역사를 바꾸는 발견보다 더 어려운 일은, 어쩌면 그 발견이 옳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받아들이게 만드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오늘의 이야기를 마치며
오늘 '밥상 위의 세계사'에서는 장거리 항해의 선원들을 공포에 떨게 했던 괴혈병과 레몬, 그리고 김치를 담가 먹어온 우리의 시선으로 바라본 발효 채소의 지혜까지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다음에 레몬 한 조각을 물에 띄우거나, 김치 한 조각을 젓가락으로 집어 드실 때, 잠시 200여 년 전 육지를 보지 못한 채 바다를 떠돌던 선원들을 떠올려보셔도 좋겠습니다. 우리에게는 너무 흔한 새콤한 반찬 몇 조각이, 한때는 누군가의 목숨을 이어주는 귀중한 식량이었으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