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리 속에 장어를 넣었다고? 런던 빈민을 먹여 살린 장어젤리의 역사

 

영국 음식 이야기를 보다 보면 가끔 "대체 이걸 왜 먹기 시작했을까?" 싶은 음식이 등장합니다.

저에게는 장어젤리가 그중 하나였습니다.

우리에게 장어라고 하면 숯불 위에서 노릇하게 구워진 장어구이나 달콤짭짤한 양념을 입힌 장어덮밥이 먼저 떠오르잖아요.

그런데 영국, 특히 런던에는 전혀 다른 장어 요리가 있습니다. 장어를 토막 내 삶은 뒤 그 국물을 차갑게 굳혀 장어와 함께 먹는 음식, 바로 '젤리드 일스(Jellied Eels)', 우리말로 장어젤리입니다.

처음 티비에서 영상으로 봤을 때는 저도 조금 당황했습니다. 투명하고 흐물흐물한 젤리 속에 장어 토막이 박혀 있는 모습이 우리가 생각하는 장어 요리와는 너무 달랐거든요.

그런데 역사를 찾아보니 이 음식은 단순한 영국의 '괴식'이 아니었습니다. 고기 한 조각을 마음껏 먹기 어려웠던 런던의 가난한 노동자들에게 장어는 값싸게 배를 채울 수 있는 소중한 음식이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그 시절 우리나라 사정은 어땠을까요. 찾아보니 답은 그리 다르지 않았습니다. 형편이 넉넉지 않던 시절, 우리도 냇가와 강에서 민물장어를 흔하게 잡아먹었습니다. 지금은 큰맘 먹고 챙겨 먹는 보양식이지만, 원래부터 귀한 음식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이 이야기는 "귀한 우리 장어 vs 천한 런던 장어"의 구도가 아닙니다. 한때는 두 나라 모두 강가에서 흔히 잡아먹던 생선이 지금은 전혀 다른 자리에 놓여 있는데, 놀랍게도 그 사정은 서로 무관하지 않습니다. 뒤에서 다시 이야기하겠지만, 두 나라의 장어는 실제로 국제 치어 시장을 통해 은근히 얽혀 있었습니다.


영국 런던의 전통 음식 장어젤리와 산업혁명 시대 노동자들의 식문화
산업혁명기 런던 서민들의 값싼 음식이었던 장어젤리와 파이 앤 매시


1. 한때 템스강에는 장어가 넘쳐났다

오늘날 템스강을 바라보며 '저기서 잡은 장어를 저녁으로 먹어야겠다'고 생각하는 런던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하지만 과거에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장어는 영국의 강에서 흔하게 잡히는 생선이었고, 런던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중요한 먹거리였습니다. 중세에는 귀족들도 즐겨 먹었지만, 시간이 흐르며 장어는 길거리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서민 음식이 되었습니다. 16세기 런던에는 이미 이동식 화덕으로 장어 파이를 구워 파는 상인들이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그 시대 장어는 값이 싸고, 구하기 쉽고, 영양가도 높았습니다. 노동자가 많이 살던 런던 이스트엔드에서는 이 세 가지가 특히 중요했습니다. 냉장 유통이 없던 시절이라 신선한 고기나 생선을 안정적으로 공급받기 어려웠는데, 장어는 살아있는 채로 운반하고 보관할 수 있다는 큰 장점까지 있었습니다. 실제로 런던의 대표 수산시장인 빌링스게이트에서는 장어를 살아있는 상태로 보관했고, 장어 전문점들도 수조에 장어를 넣어두고 판매했습니다.

2. 왜 하필 '젤리'였을까, 그 오해와 진실

처음 이 음식을 접했을 때 가장 궁금했던 것은 '왜 굳이 젤리 형태로 만들었을까'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약간의 오해가 있습니다. 디저트용 젤리에 장어를 일부러 집어넣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장어를 토막 내 물에 삶으면, 뼈와 살에서 젤라틴 성분이 자연스럽게 우러나옵니다. 이 국물을 그대로 식히면 저절로 굳는데, 전통적인 장어젤리는 이렇게 삶은 장어를 조리액과 함께 차갑게 굳혀 먹는 음식입니다. 요즘에는 별도의 젤라틴을 더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달콤한 젤리 더하기 장어'를 떠올리면 오산입니다. 우리식으로 표현하면 '장어 육수로 만든 묵'에 가까운 음식입니다. 여기에 식초를 뿌려 먹는 것이 전통적인 방식인데, 그래도 선뜻 젓가락이 갈 것 같지는 않지만 말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삶은 국물을 그대로 굳혀 먹는 이 방식이 딱히 영국만의 독특한 발상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나라 잔칫상에 오르던 족편도 원리는 같습니다. 돼지 껍데기나 족을 오래 고아 콜라겐을 우려낸 뒤 차갑게 굳혀 편육처럼 썰어 먹는 음식이지요. 재료도 문화도 전혀 다른 두 나라에서 '뼈와 껍질을 고아 굳힌다'는 같은 지혜가 각자 자리 잡았다는 사실이 흥미롭습니다. 먹을 것을 남김없이 활용하려는 마음은 동서양이 다르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3. 산업혁명 시대 런던의 '패스트푸드'

19세기 산업혁명이 진행되며 런던 인구는 폭발적으로 늘었습니다. 공장과 부두, 시장에서는 수많은 노동자가 하루 종일 몸을 움직였습니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화려한 만찬이 아니라 싸고, 빠르고, 든든한 한 끼였습니다.

그 역할을 했던 음식이 바로 장어였습니다. 길거리에서 팔리던 장어와 장어 파이는 19세기 중반부터 전문적인 '일, 파이 앤 매시(Eel, Pie & Mash)' 가게로 발전했습니다. 런던박물관 자료에 따르면 이스트런던의 F. Cooke 가문은 1862년부터 장어와 파이를 파는 가게를 운영해 왔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김밥집이나 분식집처럼, 바쁜 하루 중 빠르게 배를 채우는 공간이었던 셈입니다.

4. 뜨거우면 반 페니, 차가우면 1페니

장어가 얼마나 대중적인 길거리 음식이었는지 보여주는 재미있는 기록도 있습니다.

런던박물관에는 1884년 한 소년에게 가장 먹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장어 한 컵이라고 답했다는 기록이 소개돼 있습니다. 그런데 가격이 흥미롭습니다. 뜨거운 장어는 반 페니, 차갑게 굳힌 장어젤리는 1페니였다고 합니다.

지금 생각하면 의아합니다. 왜 차가운 쪽이 더 비쌌을까요. 적어도 이 기록을 보면, 장어젤리가 우연히 남은 부산물이 아니라 이미 하나의 독립된 상품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 눈에는 낯선 음식이 당시 런던 아이에게는 용돈을 들고 사 먹고 싶은 간식이었다는 사실이 재미있습니다.

5. 초록색 소스의 정체

장어젤리와 함께 자주 등장하는 음식이 하나 있습니다. 파이 앤 매시입니다.

고기 파이에 으깬 감자를 곁들이고 그 위에 초록빛 소스를 넉넉히 부어 먹는데, 이 소스의 이름이 '리커(liquor)'입니다. 이름 때문에 술이 들어갔다고 오해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전통적으로 장어를 삶은 국물에 파슬리를 넣어 만든 소스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지금도 런던의 전통 가게에서는 파이와 으깬 감자에 이 파슬리 리커를 곁들입니다.

장어 한 마리로 살은 먹고, 삶은 국물은 소스로 쓰고, 남은 것은 파이에 활용했던 셈입니다. 먹을 것이 귀했던 사람들의 음식에는 버리는 부분이 별로 없습니다.

6. 화려한 레스토랑이 아니라 노동자의 식당

옛 파이 앤 매시 가게 사진을 보면 의외로 내부가 근사합니다. 타일 벽과 나무 의자, 대리석 카운터가 있는 곳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곳은 귀족이 느긋하게 식사하는 고급 레스토랑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들어와 빠르게 한 끼를 해결하는 실용적인 공간이었습니다. 그래서 '레스토랑'이 아니라 '숍(shop)'이라 불렸습니다.

재미있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일부 가게에서는 손님들이 먹고 버린 장어 뼈에 미끄러지지 않도록 바닥에 톱밥을 뿌려두었다고 합니다. 공장을 마친 노동자들이 들어와 뜨거운 파이와 으깬 감자를 받아 들고, 한쪽에서는 장어가 잘리고, 바닥에는 톱밥과 뼈가 뒤섞여 있는 풍경. 증기기관과 공장 굴뚝으로만 기억되는 산업혁명의 런던 뒤에는, 이런 소박한 식사 풍경도 함께 있었습니다.

7. 이스트엔드의 장어 가게, 뿌리는 다양했다

장어젤리는 영국 전체보다 특히 런던 이스트엔드와 코크니(Cockney) 문화를 상징하는 음식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지역은 오랫동안 노동자와 이민자가 많이 살던 곳이었고, 값싼 장어와 파이 앤 매시 가게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습니다. 19세기 말에는 이런 가게가 런던에 100곳이 넘었다고 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전통 영국 음식'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이 음식을 만든 사람들의 뿌리가 무척 다양했다는 사실입니다. 대표적인 가문인 Manze의 창업자 미켈레 만제는 이탈리아 남부 출신이었고, Kelly 가문은 아일랜드계였습니다. '순수하게 오래전부터 영국인들만 만들어 먹었을 것 같은 음식'이 사실은 여러 이민자와 노동자, 시장 상인들이 뒤섞이며 만들어진 결과물이었던 셈입니다.

8. 그런데 우리 장어는 왜 귀해졌을까

여기서 잠깐, 우리나라 이야기를 짚고 넘어가고 싶습니다.

민물장어는 원래 우리 강과 하천에서도 어렵지 않게 잡히던 물고기였습니다. 형편이 넉넉지 않던 시절에는 냇가에서 잡은 장어를 그냥 구워 먹거나 국을 끓여 먹는 것이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지금처럼 '큰맘 먹고 챙겨 먹는 보양식'이라는 위상은 사실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것에 가깝습니다.

가격이 오른 진짜 이유는 조금 더 근본적인 데 있습니다. 장어는 아직 인공적으로 알을 부화시켜 기르는 완전양식이 안됩니다. 그래서 양식장에서 키우는 장어도 결국 자연에서 잡은 실뱀장어, 즉 치어를 사들여 키우는 구조입니다.

그런데 이 치어 시장이 재미있는 방식으로 런던의 사정과 얽혀 있습니다. 한국과 일본에서 주로 기르는 뱀장어(Anguilla japonica)의 자연산 치어 어획량이 먼저 크게 줄어들자, 동아시아 양식업계는 부족한 물량을 메우기 위해 다른 종의 치어로 눈을 돌렸습니다. 그 대상 중 하나가 바로 유럽장어(Anguilla anguilla)의 치어였습니다. 문제는 유럽연합이 2010년 무렵부터 멸종위기종 보호를 이유로 유럽장어 치어의 아시아 수출을 사실상 금지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도 수요는 사라지지 않았고, 그 결과 유럽에서 잡은 치어를 몰래 빼돌려 아시아로 밀반출하는 대규모 밀매 조직까지 등장했습니다. 한때 적발된 밀수 규모가 수억 유로 단위에 이른다는 보도가 나올 정도로 국제적인 문제가 되었습니다.

즉 런던 장어젤리 이야기 속에서 사라져 가는 유럽장어와, 우리 밥상 위에서 비싸진 장어는 그저 비슷한 시기에 각자 줄어든 우연이 아닙니다. 한쪽의 치어가 부족해지자 다른 쪽의 치어를 끌어다 쓰려 했고, 그 과정에서 밀수까지 벌어질 만큼, 두 나라의 장어 사정은 실제로 하나의 국제 시장 안에서 서로 얽혀 있었던 셈입니다. 런던에서는 그 결과로 장어가 '가난한 자의 음식'에서 '희귀해진 전통 음식'으로 위상이 바뀌었고, 한국에서는 치어 값과 사육 비용이 오르며 '누구나 먹던 생선'에서 '큰맘 먹어야 하는 보양식'으로 변화한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양식 장어 안에서도 또 한 번 등급이 갈립니다. 자연산 민물장어는 양식보다 훨씬 귀하고 값도 몇 배나 비싸며, 살의 탄력과 식감 자체가 다르다는 평을 받습니다. 치어 확보가 어려워지며 전체 공급이 줄어든 상황에서, 그중에서도 극히 적은 양만 잡히는 자연산은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하니 가격이 훨씬 높게 형성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이기도 합니다.

9. 템스강 위의 섬, 장어파이에서 이름을 따오다

여기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나 더 덧붙이고 싶습니다. 런던 서남부 템스강에는 실제로 '일 파이 아일랜드(Eel Pie Island)', 즉 '장어파이 섬'이라는 이름을 가진 작은 섬이 있습니다.

19세기 이 섬에는 뱃놀이객들이 즐겨 찾던 유원지가 있었는데, 이곳에서 팔던 장어 파이가 명물이었던 데서 섬 이름이 유래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그런데 이 작은 섬은 훗날 전혀 다른 이유로 유명해집니다. 1960년대 이 섬에 있던 호텔은 롤링 스톤스를 비롯한 젊은 밴드들이 초창기에 공연하던 장소로 이름을 알렸고, 영국 록 음악사의 한 페이지로 남았습니다.

장어파이를 팔던 소박한 강변 유원지가 남긴 이름이, 훗날 세계적인 록밴드의 초기 무대와 함께 회자된다는 사실이 흥미롭습니다. 음식 하나가 남긴 이름이 이렇게 전혀 다른 역사와 이어지기도 하는 모양입니다.

10. 템스강에서 장어가 사라지고 있다

한때 흔했던 장어는 지금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런던박물관에 따르면 영국 강에서 흔했던 장어는 1980년대 이후 개체수가 크게 줄었고, 유럽장어는 현재 심각한 멸종 위기종으로 분류됩니다. 런던은 오래전부터 네덜란드산 장어를 수입해 왔고, 지금 판매되는 장어 중에는 북아일랜드 등 다른 지역에서 들어오는 것도 있습니다.

장어젤리가 쇠퇴한 이유는 장어 개체수 감소 하나만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런던 사람들의 입맛이 바뀌었고, 이스트엔드의 인구 구성도 변했으며, 옛 코크니 가족들이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면서 파이 앤 매시 가게도 함께 줄었습니다. 1995년만 해도 87곳 정도가 남아 있었지만, 런던박물관 조사에 따르면 2024년 기준으로는 약 30곳 정도만 남았다고 합니다.

11. 전쟁이 나자 장어가 다시 주목받았다

장어의 역사에는 흥미로운 장면이 하나 더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와 전후 영국에서는 식량 배급이 실시되었고, 고기와 여러 식재료를 마음껏 구하기 어려워지면서 상대적으로 저렴했던 장어가 다시 중요한 음식으로 떠올랐습니다. 런던박물관은 전쟁 중과 전후 배급 시기에 장어 소비가 늘었다고 설명합니다.

평소에는 가난한 사람의 음식으로 여겨지던 재료가, 먹을 것이 부족해지자 다시 사람들의 배를 채워준 것입니다. 음식이 대접받는 자리는 결국 그 시대의 형편을 그대로 비추는 거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젤리 속에 굳어버린 옛 런던의 한 조각

솔직히 지금 제 앞에 장어젤리 한 접시를 가져다 놓는다면 저도 선뜻 숟가락을 들 자신은 없습니다.

차갑고 투명한 젤리 속에 장어 토막이 들어 있는 모습은 우리에게 익숙한 음식과 너무 다르니까요.

하지만 그 음식이 만들어진 시대를 알고 나니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산업혁명기의 런던에서 하루 종일 몸을 움직이던 노동자에게 중요한 것은 음식의 모양이 예쁜가가 아니었습니다. 몇 페니로 배를 채울 수 있는가. 쉽게 구할 수 있는가. 그리고 다시 일할 힘을 얻을 수 있는가. 장어는 그 조건을 충족시켜 주는 음식이었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장어젤리는 영국의 이상한 음식이라기보다 가난했던 런던이 만들어낸 가장 솔직한 음식에 가까운지도 모르겠습니다.

건물은 헐리고 거리는 변해도 누군가 어린 시절 먹었던 맛은 오래 남습니다. 지금도 런던의 오래된 파이 앤 매시 가게에서 장어젤리를 찾는 사람들이 있는 것도 어쩌면 그 맛 자체보다, 그 접시 안에 담긴 옛 런던을 만나고 싶어서인지 모르겠습니다.

다음에 누군가 장어젤리를 두고 "도대체 영국 사람들은 왜 이런 걸 먹었을까?"라고 한다면 이렇게 이야기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먹을 것이 풍족해서 만들어낸 별미가 아니라, 먹을 것이 넉넉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살아가기 위해 만들어낸 음식이었다고요. 그리고 우리네 역시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는, 같은 이유로 강가에서 장어를 잡아먹던 사람들이었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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