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티비 영화에서 처음 이집트 미이라를 마주했던 순간이 아직도 또렷합니다.
붕대로 칭칭 감긴 몸, 어두운 조명 아래 놓인 관, 유리벽 너머로 전해지던 서늘한 기운. 수천 년 전에 죽은 사람의 몸이 그대로 눈앞에 놓여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묘하게 무섭고 신비로웠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음식과 약의 역사를 뒤지다가 정말 믿기 힘든 사실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과거 유럽 사람들이 이 이집트 미이라를 갈아서 약처럼 먹었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제가 잘못 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미이라에서 무슨 성분을 추출해서 약을 만들었다는 뜻이겠지' 하고요.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중세와 근세 유럽에서는 실제로 미이라의 살점과 조직을 부수거나 가루로 만들어 약국에서 팔았습니다. 15세기에서 18세기 사이 유럽에서는 이런 가루를 물이나 술에 타서 마시는 일이 드물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사람들은 왜 수천 년 된 시신을 약이라고 믿었을까요. 그 답을 따라가다 보면 뜻밖에도 이야기의 출발점에는 거창한 미신이 아니라, 단어 하나의 오해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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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세와 근세 유럽에서 이집트 미라를 갈아 약처럼 사용했던 모미아의 역사 |
1. 처음에는 시체가 아니라 검은 돌 같은 물질이었다
이 이야기를 이해하려면 먼저 '모미아(mumia)'라는 단어의 원래 뜻부터 짚어야 합니다.
중세 이슬람권과 지중해 의학에서 알려졌던 '무미야(mūmiyāʾ)'는 원래 페르시아 지역 등에서 채취하던 역청 계열의 광물성 물질을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오늘날로 치면 도로 포장에 쓰는 아스팔트와 비슷한 물질을 약으로 썼다는 뜻인데, 당시 의학 수준을 생각하면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현대적인 성분 분석이 불가능했던 시절, 사람들은 오랜 경험과 고대 의학 문헌을 근거로 약재를 판단해야 했습니다.
문제는 이 약재가 유럽으로 전해지는 과정에서 벌어졌습니다. 검고 끈적한 이 광물성 물질이 이집트의 오래된 미이라 표면에서도 비슷하게 발견되자, 사람들 사이에서 '무미야'라는 약재와 '미이라에서 나온 물질'이 서서히 뒤섞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실제로 중세 라틴 의학 문헌에는 무덤 속 방부 처리된 시신에서 얻은 검은 물질을 'mumia'라고 설명하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거대한 유행이 시작된 지점이 대단한 발견이 아니라, 말의 의미가 슬쩍 옮겨간 순간이었다는 사실이 흥미롭습니다.
2. "그렇다면 미이라 자체도 약이 아닐까?"
여기서부터 논리는 위험한 방향으로 비약합니다.
미이라에서 나온 검은 물질이 약효가 있다면, 그 물질을 품고 있는 미이라 자체에도 치료 효과가 있는 것 아닐까? 12세기 무렵의 라틴 의학 문헌에서도 이미 무덤에서 나온 'mumia'를 지혈이나 장 질환 치료에 쓰는 내용이 등장합니다. 시간이 흐르며 '미이라에서 얻은 물질'과 '사람의 조직 자체'의 경계는 점점 흐려졌고, 결국 미이라를 통째로 부수고 갈아 만든 가루가 약재 시장에 등장했습니다.
당시 사람들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조금 이해가 됩니다. 병원도, 검사도, 원인을 알려줄 의사도 마땅치 않던 시절이었습니다. 수백 년간 전해 내려온 의학서가 어떤 물질을 귀한 약이라 말한다면, 절박한 환자에게는 충분히 시도해볼 만한 치료법이었을 테니까요.
3. 약국 선반에 놓인 이집트의 죽은 사람들
미이라 약은 몇몇 괴짜만 몰래 구해 먹던 물건이 아니었습니다.
중세 이후 '모미아'는 지중해를 넘어 유럽 전역으로 퍼졌고, 적어도 16세기까지는 정식 약제 용기에 담겨 유통되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그보다 훨씬 뒤까지 명맥이 이어졌습니다. 상처와 출혈, 타박상, 골절 등 여러 질환에 효과가 있다고 여겨졌고, 가루째로 먹거나 액체에 타서 복용했습니다.
당시 유럽의 약방을 상상해보면, 나무 선반에 놓인 약병들 사이, 말린 약초와 광물성 약재 옆 어딘가에 '이집트 미이라에서 얻었다'는 검은 가루가 담긴 용기가 아무렇지 않게 놓여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누군가는 돈을 내고 그것을 사서 집으로 돌아갔겠지요. 지금 우리가 약국에서 감기약을 사는 것과 다르지 않은 풍경이었을 겁니다. 그들에게 이것은 기괴한 풍습이 아니라 엄연한 의학이었습니다.
4. 수요가 늘자 가짜 미이라가 등장했다
수요가 생기면 반드시 뒤따르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짝퉁입니다.
미이라 약을 찾는 사람이 늘어나자 공급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진짜 고대 이집트 미이라는 무한정 나오는 상품이 아니었으니까요. 연구에 따르면 고대 미이라가 부족해지자 비교적 최근에 죽은 사람의 시신을 가공해 오래된 미라처럼 꾸며 파는 일이 벌어졌고, 동물의 사체나 다른 물질을 진짜 미이라로 속여 파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값비싼 상품에는 거의 예외 없이 위조품이 따라붙습니다. 값이 치솟았던 향신료 사프란도, 육두구도 그랬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사람의 몸조차 이 수요와 공급의 논리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5. 유럽 왕실도 예외는 아니었다
시체를 이용한 약, 이른바 '콥스 메디슨(corpse medicine)' 문화에서 미이라는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근세 유럽에서는 사람의 피, 지방, 심지어 두개골까지 약재로 쓰였습니다.
특히 흥미로운 사례가 있습니다. 17세기 영국 국왕 찰스 2세는 '킹스 드롭스(King's Drops)'라 불리는 물약을 애용했다고 전해집니다. 사람의 두개골 가루를 알코올에 증류해 만든 이 물약은 발작이나 경련에 효과가 있다고 여겨졌고, 왕실 주치의가 직접 제조법을 관리할 만큼 귀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평민의 미신이 아니라 한 나라의 국왕이 신뢰하던 처방이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습니다.
6. 그런데 동양에는 이보다 더 극단적인 전설이 있었다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덧붙이고 싶습니다. 사람의 몸을 약으로 여기는 발상이 유럽만의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동아시아 문헌에는 이보다 더 기이한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중국 명나라의 의학자 이시진이 쓴 「본초강목」에는 '밀인(蜜人)', 즉 꿀에 절인 사람이라는 전설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아라비아 지역의 늙은 노인들이 자원해서 마지막 몇 주간 오직 꿀만 먹고 지내다가, 죽은 뒤 시신을 꿀이 가득한 관에 넣어 백 년 가까이 숙성시키면 그 몸 전체가 귀한 약이 된다는 전승이었습니다. 실제로 이런 관행이 존재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이시진 스스로도 이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고 기록해 두었을 만큼 당시 학자들 사이에서도 회자되던 소문이었습니다.
유럽의 모미아가 우연한 오역에서 시작된 믿음이었다면, 동양의 이 전설은 애초부터 '사람의 몸을 정성껏 가공하면 약이 된다'는 발상을 노골적으로 담고 있었다는 점에서 결이 다릅니다. 사람의 몸을 약으로 보는 상상력이 동서양 모두에서, 각기 다른 얼굴로 존재했다는 사실이 흥미롭습니다.
7. 우리나라에도 있었다, 사람의 살이 약이 된다는 믿음
그리고 우리나라 역사를 들여다보면, 이 이야기가 결코 남의 나라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조선시대에는 부모가 위독할 때 자식이 자신의 손가락을 베어 피를 먹이는 단지, 허벅지 살을 베어 국을 끓여 드리는 할고, 자식의 효행을 보여줄때 종종 드라마에서 봤던 것이지만 이는 실로 효행으로 전해집니다. 「삼강행실도」를 비롯한 여러 기록에는 이런 행동을 효자·효녀의 귀감으로 칭송하는 사례가 다수 실려 있습니다. 실제로 사람의 피와 살에 병을 낫게 하는 특별한 효험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나온 행동이었습니다.
물론 유럽의 모미아처럼 상업적으로 거래되는 시장이 형성된 것은 아니었고, 유교적 효 사상과 결합된 전혀 다른 맥락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몸에는 특별한 치유력이 있다'는 믿음 자체는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유럽인들이 이집트인의 몸을 약으로 삼았던 것과, 조선의 자식들이 자기 몸을 부모의 약으로 바쳤던 것은 방향은 정반대였지만, 그 밑바탕에 흐르는 믿음만큼은 놀랍도록 닮아 있습니다.
8. 이집트인에게는 영생, 유럽인에게는 약재
이 이야기를 조사하며 가장 씁쓸했던 대목이 하나 있습니다.
고대 이집트 사람들이 미이라를 만든 이유는 후대 사람이 먹으라고 만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에게 시신을 보존하는 일은 죽음 이후의 세계와 연결된 신성한 장례 의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수백 년, 수천 년의 시간이 흐른 뒤 그 몸은 전혀 다른 문화권에서 상품이자 약재가 되어버렸습니다.
한 문화는 죽은 이를 영원히 보존하려 했는데, 다른 문화는 그 보존된 몸을 잘게 부수어 소비했습니다. 같은 미이라를 두고 이렇게 정반대의 의미가 생겨났다는 사실이 묘하게 다가옵니다. 우리가 지금 박물관에서 미이라를 볼 때도, 유리관 안에 놓인 것은 단순한 유물이 아니라 한때 실제로 살아 있었던 사람의 몸이라는 사실을 잊기 쉽습니다.
9. 약에서 구경거리로, 미이라의 운명은 또 바뀌었다
시간이 흐르며 미이라를 약으로 사용하는 관행은 서서히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유럽인의 미이라에 대한 관심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형태만 바뀌었습니다.
19세기 유럽에서는 이집트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졌고, 영국에서는 실제 미이라의 붕대를 사람들 앞에서 풀어보는 '미이라 언롤링(mummy unrolling)'이 하나의 공개 행사처럼 열리기도 했습니다. 병원 강연장은 물론 개인 저택에서도 손님들을 초대해 미이라를 풀어 관찰하는 자리가 열렸는데, 외과의사이자 고고학자였던 토머스 페티그루는 이런 공개 해체로 특히 이름을 알렸습니다.
처음에는 약이었고, 그다음에는 수집품이 되었으며, 이번에는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었습니다. 그 모든 과정에서 정작 빠져 있었던 것은 미이라가 된 당사자의 목소리였습니다.
10. '미이라를 먹었다'보다 더 놀라운 사실
처음 이 주제를 접했을 때 가장 자극적으로 느껴졌던 문장은 단순했습니다. "유럽 사람들이 미이라를 먹었다." 그 한 문장만으로도 충분히 놀랍습니다.
하지만 이야기를 끝까지 따라가고 나니 오히려 다른 부분이 더 오래 남았습니다. 누군가 처음부터 미이라를 보고 '이걸 먹으면 낫겠다'고 생각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원래 있던 약재의 이름이 슬쩍 옮겨갔고, 번역과 의학 지식이 전해지는 과정에서 그 의미가 조금씩 넓어졌으며, 결국 사람의 몸 자체가 상품이 되어버렸습니다. 작은 오해가 오랜 시간 쌓이며 사람의 시신을 사고파는 시장까지 만들어낸 것입니다.
역사에서 정말 무서운 것은 처음부터 터무니없었던 믿음이 아니라, 처음에는 그럴듯했던 생각이 조금씩 변해 전혀 다른 결론에 도달하는 과정인지도 모릅니다.
오늘의 이야기를 마치며
오늘 '밥상 위의 세계사'에서는 조금 특별한 것을 식탁 위에 올려보았습니다. 음식이라 부르기엔 섬뜩하고, 약이라 부르기엔 더욱 기묘한 모미아(Mumia) 이야기입니다.
병을 낫게 하고 싶다는 마음은 수백 년 전 사람이나 지금의 우리나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유럽의 모미아든, 동양의 밀인 전설이든, 조선의 단지와 할고든, 그 밑바탕에는 결국 사람의 몸에 특별한 치유력이 있다는 절박한 믿음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다른 것은 그때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지식과 지금 우리가 가진 지식뿐입니다.
다음에 박물관에서 고대 이집트 미이라를 만나게 된다면, 신기한 고대 유물 하나를 보는 것이 아니라, 신성한 죽은 자에서 약재로, 상품으로, 구경거리로, 그리고 다시 한 인간으로 돌아온 존재를 바라보게 될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