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토닉 한 잔이 제국을 움직였다? 퀴닌과 말라리아의 숨겨진 역사

 

시원한 진토닉 한 잔을 앞에 두고 있으면 얼음 부딪히는 소리부터 기분이 좋아집니다.

투명한 진에 톡 쏘는 토닉워터를 붓고 레몬이나 라임 한 조각을 띄우면, 탄산 사이로 은근한 단맛과 끝에 남는 살짝 쌉싸래한 여운이 묘하게 잘 어울립니다. 처음 토닉워터만 따로 마셔봤을 때도 그랬습니다. 그냥 단 탄산음료도 아니고, 그렇다고 쓰기만 한 것도 아닌 그 애매한 맛이 나쁘진 않더군요.

그런데 얼마 전 그 은은한 쓴맛의 정체를 찾아보다가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 맛을 만드는 성분인 퀴닌(quinine)이 원래는 사람의 목숨을 살리던 말라리아 치료제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말라리아라면 우리나라도 낯선 병이 아니었을 텐데, 우리 조상들은 이 병을 어떻게 다루었을까요. 찾아보니 답은 우리말 속에 이미 숨어 있었습니다. 지금도 쓰는 표현, "학을 떼다"입니다. 지긋지긋한 일을 간신히 벗어났을 때 쓰는 이 말이, 사실은 말라리아를 뜻하는 옛말 '학질(瘧疾)'에서 나온 표현이었습니다. 그만큼 이 병이 우리 조상들에게도 떼어내기 힘든 무서운 존재였다는 뜻이겠지요.

퀴닌과 진토닉, 그리고 우리에게도 있었던 말라리아의 기억을 함께 따라가 보겠습니다.


진토닉과 퀴닌의 역사, 말라리아 치료제에서 시작된 토닉워터 이야기
퀴닌과 말라리아의 역사에서 시작된 진토닉과 토닉워터의 기원을 표현


1. 토닉워터의 쌉싸래한 맛, 그 정체는 나무껍질이었다

진토닉은 이름 그대로 진(Gin)과 토닉워터(Tonic Water)를 섞어 만듭니다. 토닉워터만 따로 마셔보면 일반 탄산수와는 확실히 다른 맛이 나는데, 그 맛을 만드는 핵심 성분이 바로 퀴닌입니다.

퀴닌은 남아메리카 안데스 지역에 자라는 키나나무(Cinchona) 껍질에서 얻는 알칼로이드 성분입니다. 이 나무껍질은 17세기 무렵부터 유럽에서 말라리아성 열병을 치료하는 귀중한 약재로 알려지기 시작했고, 이후 수백 년 동안 서양 의학에서 말라리아 치료의 핵심 약재로 자리 잡았습니다.

지금 우리가 즐기는 토닉워터의 쌉싸래한 맛은, 원래 누군가 일부러 즐기려고 넣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한때는 병을 이겨내기 위해 억지로 삼켜야 했던 맛이었습니다.

2. 유럽 제국에게 대포보다 무서웠던 적

19세기 유럽 열강은 아시아와 아프리카 곳곳으로 세력을 넓혀가고 있었습니다. 군함과 대포를 앞세워 식민지를 넓혔지만, 무기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적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말라리아였습니다.

열대지역에 파견된 유럽인들은 말라리아에 걸려 쓰러지는 일이 흔했습니다. 아무리 강한 군대를 보내도 병사와 관리들이 질병으로 쓰러진다면 오래 머물 수 없습니다. 그래서 퀴닌은 단순한 약을 넘어 점점 전략적인 물자로 취급받기 시작했습니다.

19세기 중반부터는 퀴닌을 치료 목적뿐 아니라 예방적으로 복용하는 방식도 확대되었습니다. 1854년 니제르 탐험에서 스코틀랜드 의사 윌리엄 밸푸어 베이키가 퀴닌을 예방적으로 사용해 주목받았고, 이후 퀴닌은 열대지역에서 유럽 제국의 활동 범위를 넓혀준 중요한 도구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제국주의라고 하면 흔히 거대한 군함과 대포를 먼저 떠올리지만, 실제로는 그 군함 안의 작은 약병 하나도 역사를 움직이고 있었던 셈입니다.

3. 나무껍질을 그대로 갈아 먹던 시절

오늘날처럼 처음부터 정제된 퀴닌 알약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초기에는 키나나무 껍질을 말려 잘게 갈아서 물이나 와인 같은 액체에 섞어 복용했습니다.

그러다 1820년 프랑스 화학자 피에르 조제프 펠티에와 조제프 비앵메 카방투가 키나나무 껍질에서 퀴닌 성분을 분리하는 데 성공합니다. 이 발견은 무척 중요했습니다. 나무껍질을 그대로 먹을 때는 약효 성분이 얼마나 들어 있는지 정확히 알기 어려웠지만, 퀴닌을 분리하면서 훨씬 일정한 용량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유럽에서는 곧 퀴닌의 상업적 생산이 시작되었고, 인도 같은 식민지에도 정제된 퀴닌이 공급되기 시작했습니다.

문제는 퀴닌이 지독하게 쓴 약이었다는 점입니다. 사람들은 어떻게든 이 쓴맛을 먹기 쉽게 만들 방법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4. "너무 써서 진을 넣었다"는 이야기, 정말 사실일까

진토닉의 유래를 찾아보면 정말 그럴듯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인도에 주둔하던 영국 군인들이 말라리아 예방을 위해 퀴닌을 먹어야 했는데 너무 써서 물과 설탕을 섞었고, 그래도 쓰니까 진을 넣었고, 거기에 라임까지 넣었더니 맛이 좋아져 진토닉이 탄생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쓴 약, 설탕, 술, 칵테일로 이어지는 이 흐름은 음식의 탄생 신화로는 더할 나위 없이 매끄럽습니다. 그런데 실제 역사 기록을 살펴보면 이야기가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5. 토닉워터는 처음부터 말라리아 약이 아니었다

오늘날과 비슷한 의미의 토닉워터가 등장한 것은 19세기 중반입니다. 1858년 에라스무스 본드가 퀴닌을 넣은 탄산음료를 'Tonic Water'라는 이름으로 특허 등록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것이 처음부터 말라리아 치료제로 홍보된 것이 아니라, 소화에 도움이 되고 몸을 튼튼하게 해준다는 건강 음료에 가까운 방식으로 판매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아는 'gin and tonic'이라는 표현이 기록에 처음 등장하는 것은 1868년, 장소는 인도 러크나우입니다. 그런데 그 기록 속 사람들은 말라리아에 걸려 억지로 약을 먹는 병사들이 아니라, 경마가 끝난 뒤 진토닉과 담배를 주문하는 모습에 가깝습니다. 즉 이미 그 무렵부터 진토닉은 더운 날씨에 마시는 시원한 기호품으로 소비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너무 완벽한 이야기는 한 번쯤 의심해볼 필요가 있는 모양입니다.

6. 그렇다고 완전히 지어낸 이야기는 아니다

그렇다고 유명한 진토닉 기원설이 전부 꾸며낸 것은 아닙니다. 퀴닌은 실제로 술과 함께 복용되기도 했습니다. 키나나무 껍질 가루를 와인에 섞어 먹는 방식은 오래전부터 있었고, 이후 정제된 퀴닌 역시 와인이나 진, 럼과 함께 사용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러니 "쓴 퀴닌을 술과 함께 먹었다"는 부분 자체는 역사적 근거가 충분합니다. 다만 "영국군이 특정한 순간에 진과 토닉워터를 섞어 오늘날의 진토닉을 발명했다"는 식의 딱 떨어지는 서사를 증명할 기록은 부족합니다. 여러 습관과 음료 문화가 오랜 시간 뒤섞이며 지금의 진토닉이 만들어졌다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할 것 같습니다.

7. 남미의 나무가 아시아로 건너가다

퀴닌 수요가 늘어나자 유럽 국가들은 새로운 고민에 빠졌습니다. 키나나무는 원래 남아메리카 안데스 지역의 식물이었는데, 생명줄과도 같은 약의 원료를 남미 공급망에만 의존하는 것은 너무 위험했습니다.

결국 19세기 중반 영국과 네덜란드는 키나나무 종자와 묘목을 아시아 식민지로 옮겨 대규모 재배를 시도합니다. 영국은 인도 등에 키나나무를 옮겼고, 네덜란드는 자바에서 재배를 확대했습니다. 영국 왕립식물원 큐 역시 인도로 키나나무를 옮기고 재배 기술을 확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식물은 원래 그 자리에 가만히 자라고 있었을 뿐인데, 사람들이 그 가치를 발견하는 순간 세계 곳곳으로 옮겨지고 무역과 식민지, 산업이 뒤따라붙는 모습이 흥미롭습니다.

8. 결국 시장을 장악한 것은 네덜란드령 자바였다

흥미로운 반전도 있습니다. 퀴닌과 대영제국 이야기가 워낙 유명해서 영국이 생산까지 지배했을 것 같지만, 세계 시장에서 가장 강력한 위치를 차지한 곳은 네덜란드령 자바였습니다. 네덜란드는 퀴닌 함량이 높은 키나 품종 개발에 성공했고, 자바는 세계적인 퀴닌 생산지로 성장해 20세기 전반까지 국제 퀴닌 공급에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했습니다.

남미에서 자라던 나무가 유럽을 거쳐 아시아 식민지에서 거대한 산업이 된 것입니다. 진토닉 한 잔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남미, 유럽, 인도, 인도네시아까지 세계 지도가 펼쳐집니다. 칵테일 한 잔의 역사치고는 제법 거창합니다.

9. 그런데 우리에게도 말라리아는 낯선 병이 아니었다

여기서 우리나라 이야기를 짚어보고 싶습니다. 말라리아는 유럽인들만 두려워하던 열대병이 아니라, 우리 조상들도 오랫동안 앓아온 병이었습니다.

「동의보감」을 비롯한 옛 의서에는 학질(瘧疾)이라는 이름으로 이 병이 상세히 다뤄지고 있습니다. 일정한 주기로 오한과 고열이 반복되는 증상 때문에 학질은 예로부터 쉽게 낫지 않는 지긋지긋한 병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리고 그 지긋지긋함은 지금도 우리말 속에 남아 있습니다. 힘든 일을 간신히 벗어났을 때 쓰는 표현 "학을 떼다"가 바로 이 학질에서 나온 말입니다. 한 번 걸리면 떼어내기가 그만큼 어려운 병이었다는 뜻이 우리말 관용구에 고스란히 새겨진 셈입니다.

10. 전쟁과 함께 다시 찾아온 말라리아

말라리아와 우리의 인연은 근현대사에서도 이어집니다. 6·25 전쟁 당시 한반도에 파병된 유엔군과 국군 사이에서도 말라리아는 실제로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이 시기 군의료 현장에서는 퀴닌을 대신해 새로 개발된 합성 항말라리아제인 클로로퀸이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흥미롭게도 이 이야기는 앞서 나온 자바 이야기와도 이어집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이 네덜란드령 인도네시아를 점령하면서 연합군은 세계 퀴닌 공급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던 자바산 퀴닌을 구하기 어려워졌습니다. 이 공급 위기가 오히려 클로로퀸 같은 합성 항말라리아제 개발을 앞당기는 계기가 되었고, 그렇게 개발된 약이 훗날 한반도의 전쟁터에서도 쓰이게 된 것입니다. 자바의 키나나무 숲에서 벌어진 국제 정세가, 결국 우리 땅의 병사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이 새삼스럽습니다.

지금도 삼일열원충에 의한 말라리아는 휴전선 인근 지역에서 매년 소수 발생하는 것으로 보고되는데, 이는 학질이 먼 옛날이야기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11. 지금 마시는 토닉워터는 더 이상 약이 아니다

여기까지 읽으면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럼 토닉워터를 자주 마시면 말라리아 예방에 도움이 될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현대의 토닉워터는 어디까지나 기호 음료이고, 역사 속 말라리아 치료용 퀴닌 의약품과 같은 용도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 토닉워터 속 퀴닌은 그저 특유의 쌉싸래한 맛을 만드는 역할을 할 뿐입니다.

한때 사람들에게 "몸에 좋으니 참고 먹어야 하는 쓴맛"이었던 것이, 이제는 "이 쌉싸래한 맛 때문에 일부러 찾는" 기호가 되었다는 사실이 흥미롭습니다. 생각해보면 우리에게도 익숙한 말이 있습니다. "몸에 좋은 약은 입에 쓰다"는 옛말입니다. 퀴닌이야말로 이 속담을 문자 그대로 실현한 물질이었던 셈인데, 시간이 흐르며 그 쓴맛 자체가 하나의 취향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오늘의 이야기를 마치며

오늘 '밥상 위의 세계사'에서는 토닉워터의 은은한 쓴맛을 따라 남미의 키나나무에서 말라리아 치료제 퀴닌, 유럽의 식민지 확장, 그리고 우리말 속에 남은 학질의 기억까지 함께 여행해 보았습니다.

다음에 토닉워터나 진토닉을 마시게 된다면 한 번쯤 잔을 들여다보게 될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는 시원하고 맛있는 음료 한 잔이지만, 그 안의 쌉싸래한 맛은 한때 누군가에게는 살기 위해 삼켜야 했던 약의 맛이었고, 우리 조상들에게도 "학을 뗀다"는 말을 남길 만큼 지긋지긋한 병과 맞서 싸운 기억이었습니다. 약이 음료가 되고, 생존을 위해 견디던 쓴맛이 취향이 된 것. 진토닉 한 잔에 숨어 있는 세계사가 재미있는 이유는 바로 그 변화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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