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요네즈, 전쟁과 인형과 삼각김밥이 만든 하얀 소스의 정복사

 

어릴 적 도시락 반찬 중에 가장 손이 먼저 가던 것은 늘 감자샐러드였습니다.

삶은 감자를 으깨고 당근과 오이를 잘게 썰어 넣은 뒤 그 위를 하얗게 덮은 소스. 그 부드럽고 고소한 맛이 없었다면 감자샐러드는 그냥 삶은 감자에 불과했을 겁니다. 참치김밥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참치캔만 들어갔다면 퍽퍽했을 텐데, 마요네즈 한 숟갈이 더해지는 순간 완전히 다른 음식이 됐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이 하얀 소스의 역사를 찾아보다가 흥미로운 사실을 여럿 알게 됐습니다. "마요네즈는 전쟁 중 우연히 탄생했다"는 이야기를 다들 한 번쯤 들어보셨을 텐데, 정말 그런지부터가 사실 불분명합니다. 게다가 지금 우리가 익숙하게 먹는 그 진하고 고소한 마요네즈는 사실 프랑스보다 일본 쪽에 훨씬 더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도 새삼스러웠습니다.

오늘은 냉장고 문을 열면 늘 그 자리에 있는 하얀 소스, 마요네즈의 진짜 이야기를 따라가 보겠습니다.


마요네즈의 기원과 전쟁에서 시작되었다는 전설을 표현한 실사 이미지

마요네즈의 역사와 마온 항구 전설을 담은 썸네일 이미지



1. 전쟁에서 태어났다는 소스, 정말일까

가장 널리 알려진 기원설은 1756년 7년 전쟁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프랑스의 리슐리외 공작이 스페인령 메노르카섬의 마온(Mahón) 항구를 점령한 뒤 승전을 축하하는 연회를 열었는데, 요리사가 크림을 이용해 소스를 만들려다 재료가 부족해지자 대신 달걀노른자와 올리브오일을 섞어 새로운 소스를 만들었고, 이것이 마온 항구의 이름을 따 '마오네즈(Mahonnaise)'라 불리다가 지금의 마요네즈가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야기 자체는 무척 매력적입니다. 위기의 순간에 즉흥적으로 탄생한 발명품이라는 서사는 언제 들어도 흥미롭습니다. 하지만 정작 이를 뒷받침할 만한 당시의 확실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금 역사학자들은 이 이야기를 '여러 가능한 기원설 가운데 하나' 정도로 다룹니다. 너무 잘 짜인 이야기는 한 번쯤 의심해봐야 한다는 사실을, 저는 이런 음식사를 찾아볼 때마다 새삼 느낍니다.

2. 프랑스 것일까, 스페인 것일까

원조 논쟁도 여전히 진행형입니다. 프랑스는 마요네즈를 자국 요리를 대표하는 소스 중 하나로 소개하지만, 스페인 쪽에서는 메노르카섬에서 이미 오래전부터 달걀과 올리브오일을 섞은 비슷한 소스를 만들어 먹었다고 주장합니다. 즉 프랑스가 처음 발명한 것이 아니라, 이미 있던 지중해 지역의 소스를 세계적으로 알린 쪽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정답은 아직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달걀과 올리브오일이라는, 지중해 지역에서 가장 흔했던 두 재료가 만나 이 소스가 탄생했다는 사실입니다.

3. 물과 기름을 하나로 묶는 작은 기적

마요네즈에는 사실 상당히 흥미로운 과학이 숨어 있습니다.

기름과 물은 원래 서로 섞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달걀노른자 속에 들어 있는 레시틴이라는 성분이 두 재료를 붙잡아 하나로 연결해줍니다. 기름 방울을 아주 작게 쪼개 물 속에 고르게 흩어놓는 유화(emulsion) 작용 덕분에,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재료가 부드럽고 크리미한 하나의 소스로 완성되는 것입니다.

지금이야 마트에서 병째로 사 오면 그만이지만, 당시 사람들에게는 상당히 신기한 조리법이었을 겁니다. 기름을 아주 조금씩, 정말 방울방울 떨어뜨리며 계속 저어야만 소스가 분리되지 않고 완성된다는 사실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아마 수없이 많은 실패를 거쳤을 것 같습니다.

4. 귀족의 연회에서 서민의 냉장고로

18세기와 19세기에는 마요네즈가 주로 귀족들의 연회에서 사용되는 고급 소스였습니다. 하지만 산업혁명 이후 식품 제조 기술이 발전하면서 병에 담긴 마요네즈가 시중에 판매되기 시작했고, 이제는 누구나 손쉽게 즐길 수 있는 소스가 되었습니다.

미국에서는 특히 샌드위치 문화와 함께 마요네즈가 빠르게 퍼졌습니다. 감자샐러드와 코울슬로 같은 요리에도 빠질 수 없는 재료로 자리 잡았습니다.

5. 미국 남부와 북부, 마요네즈로도 나뉜다

여기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덧붙이고 싶습니다. 미국에서는 지역에 따라 선호하는 마요네즈 브랜드가 완전히 다릅니다.

미국 남부에서는 '듀크스(Duke's)'라는 브랜드가 압도적인 지지를 받는데, 이 브랜드는 1917년 유지니아 듀크라는 여성이 버지니아의 한 군부대 근처에서 샌드위치를 만들어 팔면서 시작되었다고 전해집니다. 그가 직접 만든 마요네즈를 넣은 샌드위치가 병사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면서, 나중에는 아예 마요네즈만 따로 병에 담아 판매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반면 북부와 동부에서는 헬만스(Hellmann's)가 오랫동안 시장을 지배해 왔습니다. 같은 나라 안에서도 지역별로 마요네즈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가 이렇게 뚜렷하게 갈린다는 사실이 흥미롭습니다.

6. 전쟁이 낳은 또 하나의 마요네즈, 그리고 큐피 인형

오늘날 한국 사람들이 가장 익숙하게 느끼는 마요네즈 맛은 사실 프랑스식보다 일본식에 훨씬 가깝습니다.

1925년 일본에서 큐피(Kewpie) 마요네즈가 출시되었는데, 이 제품에는 흥미로운 창업 스토리가 있습니다. 창업자 나카시마 도이치로는 젊은 시절 미국을 방문했다가 현지인들의 건강한 체격에 깊은 인상을 받았고, 그 이유 중 하나로 마요네즈를 비롯한 서양 채소 요리 문화를 꼽았다고 합니다. 그는 일본인의 체격과 영양 상태를 개선하겠다는 목표를 품고 귀국해 마요네즈 생산에 뛰어들었습니다.

브랜드 이름과 마스코트도 재미있는 사연을 가지고 있습니다. '큐피'라는 이름은 당시 미국 만화가 로즈 오닐이 그린 인기 캐릭터 '큐피 인형'에서 따온 것입니다. 서양의 건강한 이미지를 일본 소비자에게 전달하고 싶었던 나카시마의 의도가 브랜드명에도 고스란히 담긴 셈입니다. 큐피 마요네즈는 일반 마요네즈와 달리 달걀노른자만 사용하고 쌀식초나 사과식초를 활용해 훨씬 진하고 부드러운 맛을 냈는데, 이 맛이 이후 일본은 물론 한국 마요네즈 맛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7. 한국에도 상륙한 하얀 소스

우리나라에서는 1970년대를 지나며 마요네즈가 본격적으로 대중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기 오뚜기가 국내에서 마요네즈를 생산하며 시장을 넓혀갔고, 빵 문화가 퍼지고 샐러드와 햄버거, 김밥, 토스트가 인기를 얻으면서 마요네즈도 함께 우리 식탁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습니다.

지금은 참치마요 김밥, 감자샐러드, 콘샐러드, 각종 토스트와 빵에 이르기까지, 없어서는 안 될 재료가 되었습니다.

8. 삼각김밥 한 줄이 만든 마요네즈 신드롬

여기서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마요네즈 문화 하나를 짚고 싶습니다. 바로 편의점 참치마요 삼각김밥입니다.

1990년대 편의점이 본격적으로 확산되던 시기, 참치와 마요네즈를 섞은 속을 넣은 삼각김밥이 등장하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습니다. 바쁜 학생들과 직장인들에게 한 끼를 빠르고 간편하게 해결해주는 음식으로 자리 잡았고, 지금도 편의점 삼각김밥 판매 순위에서 참치마요는 늘 상위권을 지키는 스테디셀러입니다. 최근에는 명란마요를 비롯해 여러 마요네즈 계열 신제품이 꾸준히 출시될 만큼, 마요네즈는 이제 한국 편의점 음식 문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지중해의 어느 항구에서 시작됐다는 소스가, 몇백 년 뒤 한국의 편의점 냉장고 안에서 삼각김밥과 만나 완전히 새로운 형태로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합니다.

9. 전쟁이 마요네즈를 바꾼 또 다른 순간

마요네즈와 전쟁의 인연은 마온 항구 신화만이 아닙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에서는 달걀과 기름 배급이 부족해지면서 전통적인 방식의 마요네즈를 만들기가 어려워졌습니다.

그러자 달걀 함량을 줄이고 전분 등으로 농도를 보완한 대체 소스가 등장했는데, 이것이 지금도 영국에서 즐겨 먹는 '샐러드 크림(Salad Cream)'의 뿌리가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정통 마요네즈보다 새콤하고 가벼운 맛이 특징인 이 소스는, 전쟁으로 인한 물자 부족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산물인 셈입니다. 부족한 재료 속에서 새로운 소스가 탄생했다는 점에서, 마온 항구의 전설과도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습니다.

10. 나라마다 다른 얼굴을 한 소스

지금 마요네즈는 세계에서 가장 널리 소비되는 소스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나라마다 맛의 결이 조금씩 다릅니다.

미국은 새콤한 맛이 강하고, 프랑스는 부드럽고 담백한 편이며, 일본과 한국은 진한 감칠맛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왔습니다. 같은 이름의 소스라도 나라마다 완전히 다른 개성을 가진 음식이 된 셈입니다.

오늘의 이야기를 마치며

냉장고 문을 열면 너무나 당연하게 그 자리에 있는 마요네즈. 하지만 그 작은 병 안에는 전쟁의 전설과 원조 논쟁, 유화라는 작은 과학, 그리고 큐피 인형과 삼각김밥까지 뒤섞인 제법 긴 역사가 담겨 있습니다.

마요네즈는 그저 달걀과 기름을 섞은 소스가 아니라, 시대와 문화를 거치며 전 세계 식탁으로 퍼져나간 하나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다음에 삼각김밥을 한 입 베어 물거나 감자샐러드를 뜨실 때, 그 부드러운 맛 속에 250년이 넘는 이야기가 함께 들어 있다는 사실을 한 번쯤 떠올려 보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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