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에서 저는 꼭 한 번은 현지 초밥집을 찾아갑니다.
윤기가 흐르는 밥 위에 신선한 생선 한 점이 살포시 올라간 모습을 보면, 어느 나라에서 먹든 그 정갈함에 늘 마음이 놓입니다. 이제 초밥은 미슐랭 레스토랑의 코스 요리로도 나오고, 퇴근길 편의점에서도 가볍게 집어 들 수 있는 음식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초밥의 역사를 찾아보다가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지금은 밥이 초밥의 주인공처럼 여겨지지만, 원래 초밥에서 밥은 먹는 부분이 아니라 버리는 부분이었다는 것입니다.
처음 이 문장을 읽었을 때는 잘못 읽은 줄 알았습니다. '초밥에서 밥을 버렸다고?' 그런데 사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니, 우리나라에도 이와 무척 닮은 음식이 따로 있었다는 사실까지 발견하게 됐습니다.
밥이 버려지던 시절부터 세계 최고의 음식이 되기까지, 초밥의 긴 여정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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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선 저장법에서 시작된 초밥이 오늘날 세계적인 음식으로 발전한 과정을 담은 이미지입니다 |
1. 초밥은 일본에서 시작되지 않았다
많은 사람이 초밥을 일본 고유의 발명품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뿌리는 일본보다 훨씬 남쪽인 동남아시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 생선을 오래 보관하는 일은 큰 숙제였습니다. 사람들은 생선을 소금에 절인 뒤 밥 속에 파묻어 오랫동안 발효시키는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밥 속에서 만들어지는 젖산 덕분에 생선이 쉽게 상하지 않고 오래 저장되었던 것입니다. 이 저장법이 중국 남부를 거쳐 일본으로 전해졌습니다. 당시 사람들에게 중요했던 것은 밥맛이 아니라, 오직 생선을 얼마나 오래 보관할 수 있느냐였습니다.
2. 밥은 먹지 않고 버렸다
이 초기 형태의 초밥을 나레즈시(熟れ鮨)라고 부릅니다. 만드는 과정은 지금의 초밥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오래 걸렸습니다. 생선을 소금에 절인 뒤 밥과 함께 나무통에 넣고 돌로 눌러 몇 달, 길게는 1년 넘게 발효시켰습니다.
발효가 끝나면 생선은 진한 감칠맛을 갖게 되지만, 함께 들어 있던 밥은 강한 산미와 발효 냄새 때문에 대부분 그냥 버려졌습니다. 밥은 그저 생선을 지키는 포장재 역할만 했던 셈입니다. 지금의 초밥에서는 밥이 주인공 대접을 받지만, 시작은 정반대였다는 사실이 새삼 낯설게 느껴집니다.
3. 지금도 남아 있는 '원조 초밥'
이 오래된 방식은 지금도 일본 시가현 비와호 주변에서 후나즈시(鮒ずし)라는 이름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붕어를 소금에 절이고 밥과 함께 1년에서 길게는 3년 가까이 발효시키는데, 뚜껑을 여는 순간 치즈를 연상시키는 강렬한 향이 올라옵니다.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는 꽤 낯선 음식이지만, 좋아하는 사람은 열광적으로 찾는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홍어와 묘하게 닮았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사실 이렇게 '곡물과 함께 생선을 발효시켜 저장하는' 방식은 일본만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이와 거의 같은 원리로 만든 전통 음식이 있었습니다. 바로 함경도 지역의 향토음식인 가자미식해입니다. 가자미를 손질해 조밥이나 좁쌀밥, 무채와 고춧가루 등을 버무려 삭히는 이 음식은, 곡물의 발효력을 빌려 생선을 저장한다는 발상에서 일본의 나레즈시와 뿌리가 거의 같습니다. 다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밥을 버리고 생선만 먹었던 반면, 우리 식해는 삭힌 밥알과 생선, 채소를 함께 버무려 그대로 먹습니다. 같은 원리에서 출발했지만, 밥을 버리느냐 함께 먹느냐에서 두 나라 음식의 운명이 갈린 셈입니다.
4. 그런데 우리는 왜 밥 없이 회를 먹었을까
여기서 또 하나 짚고 싶은 지점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신선한 생선을 날로 먹는 문화, 즉 회가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는데, 회에는 애초에 밥이 함께 오르지 않습니다. 초고추장에 찍어 상추쌈과 곁들여 먹는 것이 우리에게 익숙한 방식입니다.
일본의 초밥이 '생선을 오래 보관하려고 밥을 이용하는' 발상에서 출발했다면, 우리의 회 문화는 애초에 신선도를 유지해 곧바로 먹는 쪽으로 발전했습니다. 저장의 필요성이 상대적으로 적은 연안 지역에서는 굳이 밥으로 감싸 발효시킬 이유가 없었던 것이지요. 같은 생선 음식이라도 그 나라의 어업 환경과 유통 사정에 따라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발전했다는 사실이 흥미롭습니다.
5. 사람들은 기다리기 싫었다
몇 년씩 기다려야 하는 음식은 아무래도 번거로웠습니다. 사람들은 더 빨리 먹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고, 발효 기간을 점점 줄이거나 생선이 채 익기 전에 먹는 방식도 등장했습니다.
결정적인 전환점은 식초였습니다. 오랜 발효를 거치지 않아도 식초를 쓰면 비슷한 새콤함을 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예전 같으면 버려졌을 밥을 이제는 함께 먹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기의 초밥을 하야즈시(早ずし)라 부르는데, 오늘날 초밥으로 이어지는 결정적인 변화였습니다.
6. 에도에서 초밥 혁명이 일어나다
19세기 초 에도, 지금의 도쿄는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대도시였습니다. 바쁜 도시 사람들은 오래 기다리는 음식보다 빠르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원했고, 이때 등장한 것이 니기리즈시(握り寿司)입니다. 식초를 넣은 밥을 손으로 뭉친 뒤 신선한 생선을 올리는 방식이었습니다. 몇 초면 만들 수 있었고 발효를 기다릴 필요도 없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익숙하게 아는 초밥의 모습이 바로 이때 완성됩니다.
7. 원래 초밥은 고급 음식이 아니었다
지금은 초밥이 비싼 음식이라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에도 시대에는 오히려 패스트푸드였습니다. 길거리 노점에서 주문하면 바로 만들어주었고, 사람들은 서서 먹거나 포장해 가져갔습니다. 지금의 햄버거나 김밥 한 줄과 비슷한 위치였던 셈입니다.
당시 초밥은 지금보다 훨씬 컸습니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밥 위에 생선을 큼직하게 올려 한두 개만 먹어도 배가 찰 정도였습니다. 지금 우리가 먹는 한입 크기 초밥은, 시간이 흐르며 조금씩 작아진 결과입니다.
8. 냉장고가 초밥의 운명을 바꾸다
초밥이 세계적인 음식이 된 가장 큰 이유는 냉장 기술의 발전이었습니다. 예전에는 신선한 생선을 멀리까지 운반하기가 무척 어려웠지만, 냉장과 냉동 기술이 발전하면서 먼 지역에서도 신선한 생선을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항공 운송과 참치 양식, 국제 유통망까지 발전하면서 초밥은 일본을 넘어 세계로 퍼져나갔습니다. 이제는 뉴욕과 런던, 파리, 서울에서도 비슷한 품질의 초밥을 맛볼 수 있습니다.
9. 미국이 초밥을 또 한 번 바꾸었다
1970년대 미국에서는 새로운 초밥이 등장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캘리포니아 롤입니다. 날생선을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들을 위해 아보카도와 게맛살, 오이 등을 넣고 김을 안쪽으로 말았습니다. 이후 크림치즈와 새우튀김, 매운 소스까지 들어간 다양한 롤이 만들어졌습니다.
처음에는 일본에서도 "저건 초밥이 아니다"라는 반응이 적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일본에서도 역으로 이런 스타일의 롤을 판매하게 되었습니다. 음식은 한 나라를 떠나는 순간부터 그 나라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계속 변화한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10. 한국도 김밥으로 비슷한 길을 걸었다
이 대목에서 우리나라의 김밥이 떠올랐습니다. 김밥 역시 해방 이후 일본의 마키즈시에서 영향을 받아 자리 잡았다는 설명이 널리 알려져 있는데, 시간이 흐르며 식초 대신 참기름과 소금으로 밥간을 하고 단무지, 햄, 맛살, 시금치 등을 넣는 우리만의 방식으로 완전히 자리 잡았습니다.
캘리포니아 롤이 미국에서 태어나 일본으로 역수출된 것처럼, 최근에는 한국식 김밥도 해외에서 'Korean gimbap'이라는 이름으로 인기를 얻으며 세계 각국의 편의점과 마트에 진출하고 있습니다. 한 나라에서 시작된 밥과 김의 조합이 바다를 몇 번이나 건너며 각자의 방식으로 진화한 셈입니다.
11. 한국에서 초밥은 어떻게 자리 잡았을까
우리나라에서 초밥은 한동안 특별한 날에나 먹는 음식이었습니다. 하지만 냉장 유통이 발달하고 회전초밥 전문점이 늘어나면서 훨씬 친숙한 음식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대형마트와 편의점에서도 손쉽게 초밥을 살 수 있습니다.
연어초밥과 새우초밥, 참치초밥은 물론 불고기초밥이나 치즈를 올린 퓨전 초밥까지 등장했습니다. 일본에서 완성된 현대식 초밥이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또 한 번 변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의 이야기를 마치며
초밥은 원래 생선을 오래 보관하기 위한 저장법이었습니다. 그 시절 밥은 먹는 음식이 아니라 버리는 재료였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며 사람들은 발효를 기다리지 않고도 맛있는 초밥을 만드는 법을 찾아냈고, 버려지던 밥은 어느새 초밥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니, 우리에게도 가자미식해라는 이름으로 같은 지혜가 남아 있었다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됐습니다. 밥을 버리느냐 함께 먹느냐, 회로 곧장 먹느냐 발효시켜 저장하느냐. 결국 같은 바다와 같은 곡식을 두고도 나라마다 조금씩 다른 길을 걸어온 셈입니다.
오늘날 초밥은 미슐랭 레스토랑의 최고급 요리이기도 하고, 편의점에서 가볍게 즐기는 한 끼이기도 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음식 중 하나가 된 이 요리가, 처음에는 밥을 버리기 위해 만든 저장법이었다는 사실이 여전히 신기하게 느껴집니다.
다음에 초밥 한 점을 집어 들게 된다면, 그 밥 한 알 한 알 속에 수백 년 동안 이어진 발효와 저장의 지혜, 그리고 우리의 식해와 회 문화까지 이어지는 동아시아 음식사의 한 조각이 담겨 있다는 사실도 함께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