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저희 집에서 카레를 끓이는 날은 현관문을 열기도 전에 냄새로 먼저 알 수 있었습니다.
감자와 당근, 양파와 고기를 큼직하게 썰어 넣고 노란 카레가루를 풀어 걸쭉하게 끓인 뒤 따뜻한 밥 위에 듬뿍 얹어 먹던 그 음식. 반찬이 변변찮은 날에도 카레 한 그릇이면 밥 한 공기를 뚝딱 비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군대에서도, 학교 급식에서도 카레가 나오는 날은 유독 반가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랫동안 카레를 당연히 인도에서 그대로 건너온 음식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인도 음식점에서 진짜 인도식 커리를 처음 먹어보고는 살짝 당황했습니다. 우리가 아는 그 노란색 카레와 맛도, 향도, 농도도 상당히 달랐거든요. 감자가 꼭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모든 요리가 노란색인 것도 아니었습니다. 국물이 거의 없는 요리도 있었고, 코코넛밀크가 들어간 것도 있었고, 붉고 매운 것부터 부드럽고 하얀 것까지 종류가 셀 수 없이 많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먹는 그 카레는 대체 어디서 온 걸까요? 그 답을 따라가다 보면 놀랍게도 인도의 향신료 시장에서 시작해 영국 식민지와 군함, 일본 해군을 거쳐 우리 집 밥상과 학교 급식판까지 이어지는 제법 긴 여정을 만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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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에서 시작된 카레가 영국과 일본을 거쳐 한국 식탁에 자리 잡기까지의 역사를 담은 썸네일 |
1. 인도에는 원래 '카레'라는 음식이 없었다
"카레는 인도 음식이다"라는 말 자체는 틀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인도 사람들이 예로부터 자기네 음식을 몽땅 하나로 묶어 '카레'라고 불러온 것은 아닙니다.
인도는 땅이 넓고 민족과 종교, 언어가 무척 다양합니다. 지역마다 쓰는 향신료와 조리법도 크게 다릅니다. 북부에서는 유제품과 밀, 고기를 이용한 진하고 걸쭉한 요리가 발달했고, 남부에서는 쌀과 코코넛, 타마린드를 활용한 비교적 묽고 새콤한 요리가 많습니다. 실제 인도에서 쓰는 음식 이름도 코르마, 달, 사그, 빈달루, 삼바르처럼 저마다 다릅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커리(curry)'라는 단어는 영국인들이 인도의 다양한 향신료 요리를 자기들 방식으로 이해하고 분류하는 과정에서 널리 퍼진 표현입니다. 남인도 타밀어로 소스나 반찬을 뜻하는 '카리(kari)'에서 유래했다는 설명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즉 인도에는 수많은 향신료 요리가 있었지만, 이를 한데 묶어 '커리'라 부른 것은 주로 유럽인들이었습니다. 인도인에게 커리란 하나의 정해진 음식이 아니라, 집과 지역과 계절에 따라 매번 달라지는 수많은 요리의 세계에 가까웠던 것입니다.
2. 유럽인을 열광시킨 향신료
카레의 역사를 이해하려면 먼저 향신료 이야기부터 짚어야 합니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의 유럽에서 후추와 계피, 정향, 육두구 같은 향신료는 단순한 조미료가 아니라 음식 냄새를 덮고 맛을 풍부하게 해주는 귀한 사치품이었습니다. 유럽 상인들은 이 향신료를 얻기 위해 먼바다로 나섰고, 포르투갈과 네덜란드, 영국이 아시아 항로와 무역 거점을 두고 경쟁하면서 향신료는 세계사를 움직이는 상품이 되었습니다. 콜럼버스가 서쪽으로 항해했던 이유 가운데 하나도 아시아 향신료 산지로 가는 새로운 길을 찾기 위해서였습니다.
강황, 후추, 고수 씨, 커민, 생강, 카다멈처럼 지금 카레에 쓰이는 재료들은 인도 요리에서 오랫동안 활용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인도 가정에서는 모든 향신료를 정해진 비율로 섞은 공용 '카레가루' 같은 것을 쓰지 않았습니다. 요리하는 사람이 그날 만들 음식에 맞춰 향신료를 직접 볶고 빻아 조합했고, 향신료 혼합물을 뜻하는 '마살라'조차 집집마다 배합이 달랐습니다. 같은 요리라도 어느 지역에서 누가 만드느냐에 따라 맛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었습니다.
3. 영국인은 인도 음식을 그대로 가져가고 싶었다
17세기 이후 영국 동인도회사는 인도에서 영향력을 넓혀갔습니다. 인도에 머물던 영국인들은 현지 요리사가 만든 향신료 음식에 점점 익숙해졌는데, 문제는 본국으로 돌아간 뒤였습니다.
인도 요리사가 눈대중으로 섞던 여러 향신료를 영국 가정에서 그대로 재현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필요한 향신료를 하나씩 구하는 것도 번거로웠고 배합 비율도 알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영국인들은 인도의 복잡한 향신료 문화를 자신들이 다루기 쉬운 형태로 단순화하기 시작했습니다. 강황과 고수 씨, 커민, 호로파, 후추 등을 미리 정해진 비율로 섞어 놓은 '카레 파우더', 즉 카레가루가 이렇게 탄생했습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인물 한 명을 짚고 넘어가고 싶습니다. 1810년, 인도 벵골 출신의 사케 딘 마호메드라는 인물이 런던에 '힌두스탄 커피하우스(Hindoostane Coffee House)'라는 곳을 열었습니다. 이는 영국 최초의 인도 음식점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이 사람은 나중에 '샴푸(shampoo)'라는 단어의 어원이 된 인도식 머리 마사지 요법을 영국에 소개해 왕실의 신임을 얻은 인물로도 유명합니다. 한 사람이 영국에 커리 문화와 샴푸 문화를 동시에 소개했다는 사실이 재미있습니다.
비슷한 시기 영국에서는 '멀리거토니 수프(Mulligatawny soup)'라는 음식도 인기를 끌었는데, 이 이름 역시 타밀어로 '후추 물'을 뜻하는 '밀라구 타니(milagu thanni)'에서 유래했습니다. 인도의 향신료 국물이 영국 상류층의 식탁에서 수프라는 서양식 형태로 재탄생한 초기 사례인 셈입니다. 18세기 영국 요리책에는 이미 이런 커리 요리법과 향신료 배합법이 소개되기 시작했고, 이후 상업적으로 만들어진 카레가루가 팔리면서 영국 가정에서도 비교적 간편하게 '인도풍 음식'을 만들 수 있게 됐습니다.
4. 영국이 만든 것은 카레가 아니라 '표준화된 카레가루'였다
그러니 "카레는 인도 음식인데 영국이 만들었다"는 말은 절반만 맞는 이야기입니다.
인도인들은 영국이 오기 훨씬 전부터 수많은 향신료 요리를 만들어 먹었습니다. 영국이 인도의 커리를 처음 만든 것은 아닙니다. 대신 영국은 서로 다른 인도 요리를 '커리'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묶고, 복잡한 향신료 조합을 누구나 쓸 수 있는 카레가루로 표준화했습니다. 인도의 다양한 음식 문화가 영국인의 눈을 거치며 하나의 상품이 된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카레가루에는 색을 내기 좋은 강황이 많이 들어갔습니다. 그 결과 서양 사람들에게 커리는 점차 '노란색 향신료 요리'로 각인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실제 인도 요리를 보면 모든 커리가 노란색은 아닙니다. 토마토와 고추로 붉은색을 내기도 하고, 시금치와 허브로 초록빛을 내기도 하며, 견과류와 크림이 들어간 연한 색 커리도 있습니다. 우리가 카레를 '노란 음식'으로 떠올리는 것은 인도 전통 전체라기보다 영국식 카레가루의 영향이 큰 셈입니다.
5. 영국식 카레는 점점 인도 음식과 멀어졌다
영국으로 건너간 커리는 현지 식문화에 맞게 다시 변했습니다. 향신료의 강도를 낮추고 밀가루나 육수로 소스를 걸쭉하게 만들었고, 여기에 고기와 채소를 넣어 스튜처럼 끓인 뒤 쌀밥과 함께 먹었습니다.
인도에서는 지역과 종교에 따라 양고기, 닭고기, 생선, 콩, 채소 등 재료가 다양했지만, 영국식 커리는 점차 일정한 카레가루와 고기, 걸쭉한 소스로 이루어진 음식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인도에서 영국으로 건너온 시점부터 이미 원래의 모습과는 다른 음식이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영국식 카레는 다시 배를 타고 동쪽으로, 이번엔 일본으로 향합니다.
6. 일본은 인도가 아니라 영국을 통해 카레를 만났다
일본에 카레가 본격적으로 전해진 것은 메이지 시대였습니다. 당시 일본은 서양의 군사제도와 과학기술, 생활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고, 특히 강한 해군을 만들기 위해 당대 최강으로 평가받던 영국 해군의 제도와 식단을 참고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영국식 커리도 함께 일본에 들어왔습니다.
그러니까 일본 카레는 인도에서 곧바로 건너온 음식이라기보다, 인도 요리가 영국식으로 변형된 뒤 다시 일본으로 전해진 음식에 가깝습니다. 일본인은 여기에 밀가루를 볶아 만든 루를 더해 소스를 한층 걸쭉하게 만들었고, 향신료의 강한 향은 줄였습니다. 여기에 즐겨 먹던 흰쌀밥을 곁들이면서 오늘날의 카레라이스가 탄생했습니다. 인도의 향신료 요리가 영국에서는 스튜가 되고, 일본에서는 밥 위에 얹어 먹는 걸쭉한 소스가 된 것입니다.
7. 일본 해군이 카레를 선택한 이유
일본 카레의 대중화 과정에서 빠질 수 없는 곳이 해군입니다. 배 안에서 많은 인원의 식사를 준비하려면 한꺼번에 많은 양을 만들 수 있어야 했고, 좁은 공간에서도 조리하기 쉬워야 했으며, 고기와 채소를 함께 먹을 수 있어야 했습니다. 카레는 이 조건에 잘 맞았습니다. 큰 솥에 고기와 감자, 당근, 양파를 넣고 끓이면 많은 승조원에게 한 번에 따뜻한 식사를 낼 수 있었고, 밀가루가 들어간 걸쭉한 소스는 흔들리는 배 안에서도 비교적 먹기 편했을 것입니다.
일본 해상자위대는 지금도 함정과 부대마다 특색 있는 카레 조리법을 가지고 있으며, 공식 홈페이지에 여러 함정의 레시피를 공개하고 있습니다. 옛 해군 조리서를 바탕으로 재현한 카레에는 쇠고기와 감자, 당근, 밀가루, 카레가루 등이 들어갑니다.
8. 카레가 각기병을 없앴다는 이야기, 사실일까
일본 해군 카레를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해군이 각기병을 예방하기 위해 카레를 도입했다는 주장입니다.
당시 일본군에서는 흰쌀밥을 많이 먹는 병사들 사이에서 비타민 B1 결핍으로 생기는 각기병이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고기와 채소를 함께 넣은 카레가 영양을 다양하게 공급했다는 점은 분명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카레 하나가 각기병을 해결했다고 단정하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입니다. 실제로는 보리와 고기, 채소를 포함하도록 전체 식단을 개선한 것이 더 결정적이었고, 카레는 그 개선된 해군 식단 가운데 하나였다고 보는 편이 정확합니다. 음식의 역사에는 이렇게 극적인 이야기가 자주 따라붙지만, 실제로는 한 가지 음식보다 식생활 전체의 변화인 경우가 많습니다.
9. 왜 하필 금요일에 카레를 먹을까
지금도 일본 해상자위대에서는 금요일 점심에 카레를 먹는 문화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바다에 오래 머물면 창밖 풍경도 생활도 비슷해서 요일 감각을 잃기 쉬운데, 매주 같은 요일에 같은 메뉴를 먹으며 한 주의 흐름을 확인했다는 설명이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다만 처음부터 반드시 금요일에만 먹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고, 과거에는 토요일에 제공됐다는 기록도 있어 지금의 '금요일 카레'는 해상자위대 시기에 정착한 관습으로 보는 것이 안전합니다.
지금은 함정마다 카레 맛이 다를 정도입니다. 어떤 곳은 사과와 꿀을 넣고, 어떤 곳은 커피나 초콜릿, 치즈, 와인을 더해 저마다의 맛을 냅니다. 인도의 집집마다 마살라 비법이 달랐던 것처럼, 일본 군함마다 카레 비법이 생긴 셈입니다.
10. 일본식 카레가 달고 부드러운 이유
일본 카레를 먹어보면 인도식 커리보다 향신료 맛이 부드럽고 단맛이 강하게 느껴집니다. 양파를 오래 볶아 단맛을 내고 사과나 꿀을 더하기도 하며, 버터와 밀가루로 만든 루 덕분에 소스는 짙고 걸쭉합니다. 감자와 당근, 양파, 고기를 큼직하게 넣는 방식도 일본식 카레의 특징입니다.
이 음식은 향신료가 중심인 인도 요리라기보다, 밥과 함께 먹기 좋도록 재구성된 일본식 서양 요리, 이른바 '요쇼쿠'의 하나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후 일본에서는 카레라이스뿐 아니라 카레우동과 카레빵까지 등장했습니다. 외국에서 들어온 음식이 완전히 새로운 음식군으로 뻗어나간 것입니다.
11. 한국 카레는 어떤 길로 들어왔을까
한국의 카레 역시 인도에서 곧바로 들어온 형태보다는 일본식 카레의 영향을 크게 받았습니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를 거치며 카레라이스가 알려졌지만, 오랫동안 일반 가정에서 흔히 먹는 음식은 아니었습니다.
카레가 본격적인 집밥으로 자리 잡은 것은 분말 제품이 대중화된 뒤였습니다. 오뚜기는 1969년 지금의 오뚜기카레 원형이 된 분말 즉석카레를 선보였고, 1970년에는 고형 카레, 1981년에는 끓는 물에 데워 먹는 레토르트 형태의 '3분 카레'를 내놓았습니다. 저도 자취를 시작하고 나서 가장 먼저 쟁여둔 비상식량이 이 3분 카레였던 기억이 납니다. 감자와 당근, 양파, 고기를 볶고 물을 부어 분말 카레만 풀면 되니, 한 솥으로 여러 식구가 먹을 수 있었고 다른 반찬이 많이 필요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오뚜기 광고 특유의 경쾌한 CM송들이 그렇듯, 카레 광고 역시 오랫동안 한국인의 귀에 익숙한 멜로디로 남아 있습니다. 어쩌면 그 짧은 멜로디 하나가, 우리 세대에게는 어떤 인도 향신료 이름보다도 카레를 먼저 떠올리게 하는 신호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카레는 휴일의 별미이자 학교 급식, 군대 식단, 자취생의 간편식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12. 한국 카레가 유난히 노란 이유
한국 사람들이 떠올리는 카레는 대개 선명한 노란색입니다. 이 색은 강황에서 나옵니다. 영국식 카레가루를 거쳐 일본과 한국으로 오면서 강황이 많이 들어간 분말 카레가 표준처럼 자리 잡았습니다.
한국에서는 카레 특유의 향을 강하게 내기보다 밥과 잘 어울리도록 부드럽고 고소하며 살짝 달게 만드는 방식이 발달했습니다. 매운맛도 인도의 다양한 고추 향신료와는 결이 다른, 한국인이 익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으로 조절된 매콤함에 가깝습니다. 오뚜기 역시 강황과 고추, 후추 등의 원료를 직접 배합해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카레를 만들어 왔다고 설명합니다.
결국 우리가 먹는 노란 카레는 인도 전통 음식의 단순한 복제품이 아닙니다. 인도의 향신료, 영국의 카레가루, 일본의 밀가루 루와 카레라이스, 한국의 밥상 문화가 차례로 겹쳐진 음식입니다.
13. 인도인이 한국 카레를 먹으면 뭐라고 할까
인도 사람이 한국 카레를 먹는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아마 "맛은 있지만 우리가 먹는 커리와는 많이 다르다"고 말할 가능성이 큽니다. 한국 카레에는 감자와 당근이 큼직하게 들어가고 소스가 매우 걸쭉하며, 향신료의 종류와 강도도 인도 요리보다 단순하고 부드러운 편이니까요.
그렇다고 한국 카레가 가짜라는 뜻은 아닙니다. 음식은 새로운 나라로 이동할 때마다 그곳의 재료와 입맛, 생활방식에 맞게 변합니다. 토마토가 이탈리아로 건너가 파스타소스가 되고, 고추가 한국으로 들어와 김치의 맛을 바꾼 것처럼, 카레도 여러 나라를 거치며 새로운 음식이 되었습니다. 한국 카레는 인도 커리의 흉내가 아니라, 긴 이동 끝에 탄생한 또 하나의 카레 문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이야기를 마치며
우리가 집에서 먹는 카레의 이동 경로를 정리해보면 이렇습니다. 인도에는 오래전부터 지역마다 다양한 향신료 요리가 있었습니다. 영국은 식민지 시대에 이 요리들을 '커리'라는 이름으로 묶고, 간편하게 쓸 수 있는 카레가루로 만들었습니다. 일본은 영국식 커리를 받아들여 밀가루 루와 흰쌀밥을 결합한 카레라이스를 만들었고, 한국은 일본식 카레를 바탕으로 더 부드럽고 간편한 분말 카레와 즉석카레 문화를 발전시켰습니다.
한 접시의 음식이 인도에서 영국으로, 영국에서 일본으로, 일본에서 한국으로 건너온 셈입니다. 그 과정에는 향신료 무역과 식민지 지배, 군대의 식량 문제, 산업화와 즉석식품의 발전이 모두 녹아 있습니다.
그러니 "카레는 인도 음식인데 영국이 만들었다"는 말은 완전히 맞지도, 완전히 틀리지도 않습니다. 인도가 맛의 뿌리를 만들었다면 영국은 그것을 하나의 이름과 상품으로 만들었고, 일본과 한국은 각자의 밥상에 맞는 새로운 카레를 완성했습니다.
다음에 감자와 당근이 듬뿍 들어간 카레 한 그릇을 먹게 된다면, 그 익숙한 노란 소스가 인도의 향신료 시장과 영국의 동인도회사, 일본의 군함을 지나 우리 집 밥상까지 왔다는 사실을 한 번쯤 떠올려 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