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혁명과 빵: 빵값이 오르자 사람들은 왜 거리로 나왔을까?


프랑스혁명이라고 하면 자유, 평등, 박애 같은 거창한 이념이 먼저 떠오릅니다.

바스티유 감옥 습격, 인권선언,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운 프랑스혁명의 장면들은 대부분 정치와 사상의 이야기로 표현 됩니다.

그런데 당시 파리의 평범한 사람들에게 더 절박했던 문제는 그 어떤것도 아닌 바로 빵이었습니다.

오늘날 빵은 여러 음식 가운데 하나일 뿐이지만, 18세기 프랑스 서민에게 빵은 사실상 매일의 생존을 책임지는 음식이었습니다. 

우리나라로 생각하면 쌀과 같은 음식 이지요.

그런 빵의 가격이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배는 고픈데 빵은 비싸지고, 일자리는 부족하고, 세금 부담은 무거웠습니다.

그러나 귀족과 성직자는 여전히 특권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불만이 커지고 분노가 쌓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프랑스혁명은 물론 빵 하나 때문에 일어난 사건은 아닙니다.

하지만 빵값 상승과 식량 부족은 이미 쌓여 있던 분노를 폭발시키는 강력한 불씨가 됐습니다. 당시 노동자 가정에서는 빵이 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컸고, 가격이 조금만 올라도 생계가 직접적으로 흔들렸습니다.


프랑스혁명 당시 빵값 폭등과 굶주린 시민들을 표현한 역사 이미지
빵값 폭등이 프랑스혁명의 분노를 키웠습니다.


1. 프랑스인에게 빵은 그냥 음식이 아니었다

18세기 프랑스 서민의 식탁에서 중심은 빵이었습니다.

고기나 치즈, 채소를 풍족하게 먹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특히 가난한 도시 노동자에게는 빵이 하루 열량의 상당 부분을 책임졌습니다.

자료에 따르면 당시 평범한 사람들의 식단에서 빵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컸고, 가난한 노동자는 평소에도 수입의 절반 가까이를 빵에 쓰기도 했습니다. 상황이 나빠지면 임금의 60~80%가 빵을 사는 데 들어갈 수도 있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지금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요즘 빵값이 조금 올랐다고 해서 가족 전체가 굶을 걱정은 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빵값이 몇 푼 오르는 것만으로도

“오늘 저녁 아이들에게 무엇을 먹이지?”

라는 문제가 생겼습니다.

빵값은 곧 생존의 문제였던  것입니다.

2. 흉작과 추운 겨울이 빵값을 끌어올렸다

1789년을 앞둔 프랑스의 식량 사정은 매우 좋지 않았습니다.

1780년대 후반에는 좋지 않은 날씨가 이어졌고, 1788년에는 농작물 피해가 심했습니다.

곡물 수확이 줄어들면 가장 먼저 영향을 받는 것이 밀가루 가격입니다.

밀가루가 비싸지면 빵값도 올라갑니다.

여기에 혹독한 겨울까지 겹쳤습니다.

식량 공급은 불안해지고, 도시에 들어오는 곡물의 양도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빵 대신 다른 음식을 쉽게 선택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프랑스 인구도 이전보다 크게 늘어났지만 곡물 생산이 그만큼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이런 구조적 문제까지 겹치면서 1780년대의 식량난은 더 큰 사회 불안으로 이어졌습니다.

빵이 부족하다는 소문이 돌면서 사람들은 불안해졌습니다.

누군가 곡물을 숨겨놓고 가격을 올리고 있다는 의심도 생겼습니다.

먹을 것이 부족해질수록 사람들의 분노는 상인과 정부, 그리고 결국 왕실을 향했습니다.

3. 사람들은 왕이 빵값을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당시 사람들의 생각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물가가 오르면 시장 상황이나 국제 곡물 가격을 먼저 떠올립니다.

하지만 당시 프랑스 사람들은 왕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프랑스 왕은 한때 ‘왕국의 첫 번째 제빵사’라고 불릴 정도로 백성에게 빵을 공급할 책임이 있는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왕은 사람들에게 먹고살 수 있을 만큼의 빵을 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일종의 사회적 기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빵값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오르면 어떻게 될까요?

사람들의 눈에는 단순히 시장 가격이 오른 것이 아니라

“왕이 우리를 먹여 살릴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라고 보일 수 있었습니다.

빵값 상승이 정치적 불신으로 이어진 이유입니다.

4. 혁명 전에도 이미 ‘밀가루 전쟁’이 있었다

사실 빵을 둘러싼 분노는 1789년에 갑자기 시작된 것은 아닙니다.

프랑스혁명이 일어나기 14년 전인 1775년, 프랑스에서는 이른바 ‘밀가루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정부가 곡물시장 규제를 완화한 시기에 흉작까지 겹치면서 빵값이 크게 올랐습니다.

결국 불과 몇 주 사이에 프랑스 곳곳에서 약 300건의 폭동과 소요가 일어났습니다.

군대까지 투입됐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일부 시위대가 곡물을 무조건 빼앗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가격이 너무 높다고 생각하면 곡물이나 빵을 가져간 뒤 자신들이 생각하는 ‘정당한 가격’을 남겨놓기도 했습니다.

이들에게 문제는 단순한 절도가 아니었습니다.

“사람이 살아가기 위한 음식은 누구나 살 수 있는 가격이어야 한다.”

라는 생각이 있었던 것입니다.

1789년 혁명은 이런 과정 위에서 시작됐습니다.

5. 빵값이 오르자 왕실의 특권이 더 선명하게 보였다

배가 부를 때와 배가 고플 때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하루 종일 일했는데도 빵 한 덩이를 사기가 힘든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봅시다.

그런데 왕실은 화려한 궁전에서 생활하고, 귀족들은 각종 특권을 누리고 있습니다.

평소라면 참고 넘어갔을 불평등도 굶주림 앞에서는 훨씬 더 부당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프랑스에는 이미 심각한 국가 재정 문제와 불평등한 신분제, 세금 부담, 정치적 갈등이 쌓여 있었습니다.

계몽사상을 통해 왕과 귀족의 권력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식량난까지 겹친 것입니다.

그래서 빵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왜 우리는 이렇게 힘든데 저들은 저토록 특권을 누리는가?”

라는 질문을 만들어내는 상징이 됐습니다.

6. 바스티유를 습격한 사람들은 곡물도 찾고 있었다

1789년 7월 14일, 파리 시민들은 바스티유를 습격했습니다.

보통 이 사건은 정치범이 갇혀 있던 감옥을 시민들이 공격한 사건으로 기억됩니다.

그러나 당시 시민들의 관심은 무기만이 아니었습니다.

식량 부족과 곡물 문제 역시 당시 파리를 뒤덮고 있던 중요한 불안 요소였습니다. 역사는 바스티유 습격 당시 시민들이 무기를 확보하는 동시에 빵을 만들 곡물을 찾는 상황도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니까 프랑스혁명 초기의 거리에서는

정치와 생존이 따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자유를 요구하는 목소리 옆에

“빵을 달라.”

는 요구가 함께 있었습니다.

7. 여성들이 빵을 요구하며 베르사이유로 향했다

빵과 프랑스혁명의 관계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은 1789년 10월에 벌어졌습니다.

파리의 시장 여성들을 중심으로 수천 명의 군중이 거리로 나왔습니다.

이들의 중요한 요구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었습니다.

빵값은 여전히 높았고, 식량 사정은 나빴습니다.

분노한 사람들은 결국 파리에서 약 20km 떨어진 베르사이유 궁전으로 향했습니다.

그곳에는 왕과 왕비가 있었습니다.

이 사건은 흔히 ‘여성들의 베르사이유 행진’이라고 불립니다.

결국 루이 16세와 왕실 가족은 베르사유를 떠나 파리로 피신하게 됐습니다.

왕이 더 이상 백성들과 멀리 떨어진 궁전 안에서만 살아갈 수 없게 된 것입니다. 빵을 요구하며 시작된 시위가 왕의 거처까지 바꿔놓은 셈입니다. 빵을 둘러싼 시위는 혁명기의 중요한 정치적 행동으로 이어졌습니다.

8.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는 정말 마리 앙투아네트가 말했을까?

프랑스혁명과 빵 이야기를 하면 거의 빠지지 않는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

굶주린 백성들에게 빵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은 마리 앙투아네트가 이렇게 말했다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이 말은 마리 앙투아네트가 실제로 했다고 확인된 말이 아닙니다.

비슷한 표현은 그녀가 프랑스 왕비가 되기 전의 문헌에서도 등장합니다.

따라서 오늘날에는 실제 발언이라기보다 왕실이 백성의 고통을 얼마나 모르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퍼진 이야기로 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점이 오히려 흥미롭다는게,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를 쉽게 믿었다는 사실 자체가 당시 왕실에 대한 불신이 얼마나 컸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9. 그렇다면 프랑스혁명은 빵 때문에 일어난 것일까?

여기에서는 분명하게 구분해야 합니다.

프랑스혁명은 빵값 하나 때문에 일어난 혁명이 아닙니다.

왕실의 막대한 재정 적자,

불평등한 신분제와 세금,

정치 참여를 요구한 제3신분,

계몽사상의 확산,

국가 재정위기와 정치적 무능.

수많은 문제가 동시에 얽혀 있었습니다.

하지만 역사에서 사람들이 실제 행동에 나서게 만드는 계기는 때때로 아주 현실적인 문제입니다.

그들에게 빵은 오늘 하루를 버틸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정치적인 불만과 경제적인 불만이

빵 한 덩이에서 만나 점화가 된 것입니다.

빵값이 오르자 사회의 불평등이 더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굶주림은 정부에 대한 불신을 키웠고,

그 불신은 결국 거리의 분노로 이어졌습니다.

빵 한 덩이를 다시 바라보면 프랑스혁명이 보인다

지금 우리는 빵집에 가면 수십 종류의 빵 가운데 무엇을 먹을지 고민합니다.

바게트를 고를지, 크루아상을 고를지, 달콤한 빵을 먹을지 선택합니다.

하지만 1789년 파리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빵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먹느냐, 굶느냐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프랑스혁명을 자유와 평등이라는 말만으로 바라보면 당시 거리의 분위기를 전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사람들에게는 사상도 중요했지만 오늘 가족에게 먹일 빵이 중요했습니다.

프랑스혁명은 여러 정치·사회적 원인이 폭발하면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하지만 이미 불붙기 직전이었던 사회에 기름을 부은 것 가운데 하나는 분명 빵값과 식량 부족이었습니다.

결국 역사 속에서 가장 거대한 변화도 때로는 아주 평범한 곳에서 시작됩니다.

왕궁이 아니라 시장에서,

철학책이 아니라 식탁에서,

그리고 거창한 정치 구호가 아니라

“우리에게 빵을 달라.”

는 절박한 요구에서 말입니다.

어쩌면 프랑스혁명을 이해하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바스티유 감옥보다 먼저 당시 사람들의 빈 식탁을 바라보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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