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런던, 화려한 파티장의 문이 열립니다. 한 신사가 옆구리에 파인애플 하나를 꼭 끼고 위풍당당하게 걸어 들어옵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사람에게 쏠립니다. 부러움 반, 질투 반의 눈빛들. 그런데 반전이 있습니다. 이 남자가 손에 쥔 파인애플은 그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늘 밤 파티가 끝나면 가게에 고스란히 반납해야 하는, 말 그대로 '빌린 과일'이었습니다.
먹으려고 산 것도 아니고, 들고 다니려고 빌린 과일이라니. 대체 파인애플이 무엇이었길래 이런 진풍경이 벌어졌던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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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품백 대신 파인애플을? 18세기 유럽의 엉뚱한 부의 상징인 파인애플 |
1. 파인애플이 왜 그렇게 비쌌을까
가장 큰 문제는 운송이었습니다. 열대 지방에서 자라는 파인애플을 배에 실어 유럽까지 옮기는 데는 몇 주가 걸렸고, 냉장 시설이 없던 당시로서는 유럽 해안에 닿기도 전에 대부분이 썩어버리기 일쑤였습니다.썩지 않고 무사히 도착한 극소수의 파인애플만이 시장에 나올 수 있었고, 자연히 그 값은 하늘 높은 줄 몰랐습니다. 파인애플 한 개의 가격은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약 8,000달러, 우리 돈으로 1,000만 원을 훌쩍 넘는 수준이었다고 전해집니다. 왕실과 극소수의 대부호가 아니고서는 감히 손댈 수 없는 사치품이었던 셈입니다.
직접 재배하려는 시도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파인애플을 키우기 위한 온실, 이른바 '파이너리(Pinery)'를 짓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어마어마해서, 가문의 재정이 휘청거릴 정도였다는 기록도 남아 있습니다.
2. '먹지 마세요, 들고 다니세요' 파인애플 대여업의 등장
사서 먹기에는 너무 비싸다면, 방법은 하나였습니다. 바로 빌리는 것이었죠. 이런 수요를 놓치지 않고 등장한 것이 '파인애플 대여점'이었습니다.귀족과 신흥 부유층은 파티가 열리는 밤이면 이 가게에서 파인애플을 빌려 옆구리에 끼거나 손에 들고 다니며 은근히 부를 과시했습니다. "나는 이 정도 과일을 살 수 있는 사람이다"라는 무언의 메시지였던 셈입니다.
물론 파인애플은 실제로 먹을 수 없었습니다. 파티가 끝나고 날이 밝기 전, 상하기 전에 서둘러 가게로 반납해야 했으니까요. 이렇게 반납된 파인애플은 다음 손님에게 또다시 대여되었고, 이런 과정이 몇 번이고 반복되다가 결국 진짜로 값을 치를 수 있는 부자에게 팔려서야 비로소 '먹히는' 운명을 맞이했습니다.
3. 과시욕이 남긴 엉뚱한 건축물과 흔적
파인애플에 대한 유럽인들의 집착은 단순한 유행을 넘어섰습니다. 스코틀랜드의 둔모어 백작(Earl of Dunmore)은 자신의 저택 지붕 위에 거대한 파인애플 모양의 석조 건축물을 세우기까지 했습니다. 오늘날에도 '둔모어 파인애플(Dunmore Pineapple)'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는 이 건축물은 당시 파인애플이 얼마나 대단한 부와 권력의 상징이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이후 증기선과 냉동 보관 기술이 발달하면서 파인애플은 점차 대중적인 과일로 자리 잡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흔적은 지금도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유럽의 오래된 저택 대문 기둥이나 가구 장식에서 파인애플 모양을 종종 발견할 수 있는데, 이는 바로 이 시대에 파인애플이 지녔던 '부의 상징'이라는 의미가 오랫동안 이어져 내려온 결과입니다.
상 위의 작은 사치, 그 뒤에 숨은 이야기
파인애플 한 개를 빌려서라도 손에 쥐어보고 싶어 했던 18세기 유럽 사람들의 모습은, 지금 보면 조금 우스꽝스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먼 바다를 건너야만 만날 수 있었던 귀한 과일에 대한 동경과, 그것을 소유함으로써 자신의 지위를 증명하려 했던 인간의 욕망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오늘 마트에서 몇천 원이면 살 수 있는 파인애플 한 개에도, 이렇게 화려하고 엉뚱한 역사가 숨어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지 않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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