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걀프라이 위에도 톡톡 뿌리고, 고기를 구울 때도 쓰고, 국이나 파스타의 맛이 조금 심심하다 싶으면 별생각 없이 후추통을 집어 듭니다.
마트에 가면 몇 천 원이면 한 통을 살 수 있으니, 후추를 보면서 ‘귀한 음식’이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그런데 시간을 몇백 년만 거슬러 올라가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후추의 역사를 찾아보다 보면 이런 말을 자주 만나게 됩니다.
“중세 유럽에서 후추는 금만큼 비쌌다.”
심지어 집세를 후추로 냈다거나, 후추를 돈처럼 사용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정말 그랬을까요?
손바닥 위에 올려놓으면 굴러 떨어질 만큼 작은 후추 알갱이가 정말 금과 비슷한 가치를 가졌던 걸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후추가 언제나 같은 무게의 금과 같은 가격으로 거래됐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후추가 금보다 비쌌다’는 말은 상당히 과장되어 전해진 표현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당시 유럽에서 후추는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귀한 수입품이었고, 때로는 부와 지위를 보여주는 상징이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 작은 향신료를 향한 욕망은 훗날 새로운 바닷길을 열고 세계사의 방향까지 바꾸는 데 영향을 주게 됩니다.
![]() |
| 한때 부와 권력의 상징이었던 후추 |
1. 후추는 유럽에서 자라는 식물이 아니었다
후추가 비쌀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단순합니다.
너무 멀리서 왔기 때문입니다.
검은후추의 원산지는 인도 남서부 지역입니다.
오늘날에는 여러 나라에서 후추가 재배되지만 고대와 중세 유럽에서는 상황이 전혀 달랐습니다.
유럽인이 후추를 맛보려면 인도에서 생산된 후추가 수천 킬로미터에 달하는 긴 교역로를 지나와야 했습니다.
인도에서 출발한 후추는 배를 타고 인도양을 건넜고, 중동 지역의 여러 상인들을 거쳐 지중해로 들어왔습니다. 그 뒤 베네치아 같은 상업 도시를 통해 다시 유럽 곳곳으로 퍼졌습니다.
한 번에 곧장 오는 물건이 아니었던 겁니다.
상인의 손을 거칠 때마다 운송비와 이윤이 붙었고, 지역에 따라 세금까지 더해졌습니다.
그러니 인도에서의 후추 가격과 유럽의 식탁에 올라왔을 때의 가격이 같을 리 없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당시 후추 한 알에는 단순히 향신료의 값만 들어 있던 것이 아닙니다.
인도에서 유럽까지 이어진 긴 여행의 비용이 함께 들어 있었습니다.
2. 로마인들도 이미 후추에 빠져 있었다
유럽 사람들의 후추 사랑이 중세에 갑자기 시작된 것은 아닙니다.
고대 로마에서도 후추는 상당히 인기 있는 향신료였습니다.
특히 부유한 로마인들의 식탁에서는 고기나 생선뿐 아니라 각종 소스와 음료에도 후추가 사용됐습니다.
로마 시대의 요리책으로 알려진 『아피키우스』를 살펴보면 후추가 놀랄 만큼 자주 등장합니다.
한 분석에서는 수록된 469개의 조리법 가운데 349개에 후추가 사용됐다고 설명할 정도입니다.
후추가 얼마나 귀한 물건이었는지를 보여주는 더 극적인 사건도 있습니다.
서기 408년, 서고트족의 왕 알라리크 1세가 로마를 포위했을 때의 일입니다.
로마가 포위를 풀기 위해 제공하기로 한 물품에는 금과 은, 비단 같은 귀중품이 포함돼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목록에 뜻밖의 물건 하나가 들어 있었습니다.
바로 후추 약 3,000파운드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 이상합니다.
도시를 포위한 군대에게 금과 은을 주는 건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왜 후추까지 줬을까요?
그만큼 당시 후추가 단순한 양념 이상의 가치를 가진 상품이었다는 뜻입니다.
3. 그렇다면 후추는 정말 금보다 비쌌을까?
여기서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후추는 정말 금보다 비쌌을까요?
이 이야기는 조금 조심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후추가 매우 비싼 향신료였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중세 시대 내내 후추와 금이 같은 무게에 같은 가격으로 거래됐다거나 후추가 항상 금보다 비쌌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과장입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후추가 당시 어떤 상품이었느냐입니다.
후추는 작았습니다.
가벼웠습니다.
잘 말리면 오랫동안 보관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유럽에서는 생산되지 않는 귀한 수입품이었지만 원하는 사람은 많았습니다.
장거리 무역을 하는 상인의 입장에서 이보다 좋은 상품도 없었습니다.
배 안에서 많은 공간을 차지하지 않으면서도 높은 가격에 팔 수 있었으니까요.
그러니 오늘날 마트에서 보는 후추 가격만 떠올려서는 당시 후추의 가치를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4. 후추는 부자라는 것을 보여주는 방법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유럽 사람들은 왜 그렇게 후추를 좋아했을까요?
여기에는 오래전부터 전해지는 유명한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중세 사람들이 상한 고기 냄새를 감추기 위해 향신료를 많이 사용했다.”
한 번쯤 들어본 이야기일 겁니다.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이것만으로 중세 유럽의 향신료 열풍을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상한 고기가 위험하다는 사실을 옛사람들도 몰랐던 것은 아닙니다.
고기를 오래 보관해야 할 때는 소금에 절이고, 말리고, 연기에 훈연하는 방법 등을 사용했습니다.
오히려 후추를 비롯한 향신료가 사랑받았던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희소성이었습니다.
그리고 희소한 물건은 언제나 사람의 지위를 보여주는 도구가 되기 쉽습니다.
인도와 먼 아시아 지역에서 온 후추와 계피, 정향 같은 향신료를 음식에 아낌없이 넣을 수 있다는 것은 그 집의 경제력을 보여주는 일이었습니다.
오늘날 특별한 자리에서 비싼 와인이나 캐비아, 트러플을 내놓는 것과 어느 정도 비슷했을지도 모릅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만이 목적은 아니었습니다.
“나는 이런 귀한 향신료를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 사실 자체가 중요했던 것입니다.
5. 후추를 싸게 사려면 인도로 직접 가면 되지 않을까?
유럽 상인들에게는 한 가지 고민이 있었습니다.
후추가 유럽에 도착하기까지 너무 많은 사람의 손을 거친다는 것이었습니다.
인도에서 출발한 후추가 중동의 상인들을 지나 지중해로 들어오고, 다시 여러 상인을 거쳐야 유럽 소비자에게 도착했습니다.
중간 단계가 많아질수록 가격은 올라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면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나타나는 것은 자연스럽습니다.
“중간 상인을 거치지 말고 우리가 직접 인도로 가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지 않을까?”
문제는 인도가 너무 멀다는 것이었습니다.
기존 육로와 지중해 교역망을 벗어나 인도까지 직접 갈 수 있는 새로운 길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유럽인들은 바다로 눈을 돌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서 식탁 위의 작은 후추 알갱이가 세계사와 연결됩니다.
6. 후추를 찾아 떠난 항해가 세계를 바꾸다
15세기 유럽에서는 아시아의 향신료 무역에 직접 접근하려는 욕망이 점점 커지고 있었습니다.
특히 포르투갈은 아프리카 해안을 따라 내려가 인도로 이어지는 바닷길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498년, 바스코 다 가마가 아프리카 남단의 희망봉을 돌아 인도에 도착합니다.
유럽과 인도를 바닷길로 직접 연결하는 새로운 교역로가 열린 것입니다.
반대 방향으로 길을 찾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바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입니다.
콜럼버스는 서쪽으로 항해하면 아시아에 도착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 항해는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대륙과 유럽의 본격적인 접촉으로 이어졌습니다.
물론 대항해시대가 오직 후추 때문에 시작됐다고 말하면 지나친 단순화입니다.
금과 은에 대한 욕망도 있었고, 종교와 영토 확장, 국가 간 경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후추를 비롯한 값비싼 동방의 향신료를 기존의 중동·지중해 교역망을 거치지 않고 더 직접 확보하려는 욕망이 유럽인들이 새로운 바닷길을 찾아 나선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였던 것은 분명합니다.
당시 후추는 생산지에서 유럽 소비자에게 도착하는 동안 여러 교역 단계를 거치며 가격이 크게 뛰었습니다. 유럽 상인들에게 새로운 항로의 발견은 단순한 모험이 아니라 막대한 이익이 걸린 사업이기도 했습니다.
7. 후추 무역에는 엄청난 돈이 걸려 있었다
유럽인들이 목숨을 걸고 바다로 나갈 만큼 향신료 무역에는 큰 이익이 있었습니다.
16세기 초의 한 사례를 보면 아시아에서 후추 100kg을 약 6크루자두에 구입한 뒤 유럽에서는 최소 20크루자두 정도에 판매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단순 계산만 해봐도 상당한 차이입니다.
물론 실제 항해에는 배를 준비하는 비용도 들었고, 선원들의 임금과 식량도 필요했습니다.
폭풍을 만나 배가 침몰할 수도 있었고, 해적이나 적대 세력을 만날 위험도 있었습니다.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남는 이익이 컸기 때문에 유럽 국가들은 향신료 무역에 뛰어들었습니다.
포르투갈은 주요 항구와 항로를 장악하려 했고, 뒤이어 네덜란드와 영국도 경쟁에 참여했습니다.
결국 식탁 위에 놓일 향신료를 둘러싼 경쟁은 단순한 장사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무역로를 누가 차지할 것인가.
향신료 생산지를 누가 통제할 것인가.
이 경쟁은 점차 국가 간 충돌과 식민지 확장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8. 그렇게 귀했던 후추는 왜 지금 이렇게 싸졌을까?
여기에서 또 하나 궁금해집니다.
그렇게 귀했던 후추가 지금은 왜 이렇게 흔해졌을까요?
새로운 해상 무역로가 열리면서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향신료 유통 구조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후추의 생산 지역과 공급량도 늘어났습니다.
공급이 많아지면 희소성은 떨어집니다.
희소성이 떨어지면 가격도 자연스럽게 내려갑니다.
17세기 무렵에는 후추 가격이 이전보다 크게 떨어지기 시작했고, 유럽 사람들의 관심도 조금씩 다른 기호품으로 옮겨갔습니다.
커피가 등장했고, 차와 초콜릿도 유럽인의 입맛을 사로잡기 시작했습니다.
한때 부유한 사람들의 식탁을 상징했던 후추가 서서히 평범한 향신료로 바뀌어간 것입니다.
그리고 수백 년이 흐른 지금.
그 후추는 우리 집 주방 한쪽에 놓여 있습니다.
후추통 하나를 다시 보면 세계사가 보인다
오늘 저녁 식사를 하다가 후추통을 한 번 바라보세요.
몇 번 돌리면 검은 후추 알갱이가 사각사각 떨어집니다.
우리는 별생각 없이 음식을 먹지만 시간을 몇백 년 거슬러 올라가면 그 작은 후추 하나의 모습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인도의 농장에서 시작된 후추는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넜고, 여러 나라와 수많은 상인의 손을 거쳐 유럽의 식탁에 도착했습니다.
부유한 사람들은 후추를 아낌없이 사용하면서 자신의 부를 드러냈고, 상인들은 후추를 거래하며 큰돈을 벌었습니다.
그리고 유럽 국가들은 향신료를 직접 가져오기 위해 새로운 바닷길을 찾아 나섰습니다.
그래서 “후추가 금보다 비쌌다”는 말을 굳이 문자 그대로 믿을 필요는 없습니다.
저는 오히려 이 사실이 더 흥미롭습니다.
한때 후추는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바다를 건널 만큼 가치 있는 상품이었다는 것.
그 작은 향신료를 향한 욕망은 새로운 항로를 만들었고, 세계의 무역 지도를 바꾸었으며, 서로 멀리 떨어져 있던 지역을 이전보다 훨씬 강하게 연결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음식 위에 뿌리는 후추 한 알에는 그렇게 긴 여행이 숨어 있습니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매일 먹는 밥상에서 발견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세계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