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가 너무 쓰면 조금 넣고, 요리를 하다가 단맛이 부족하면 한 숟가락 넣기도 하지요. 마트에 가면 언제든 쉽게 살 수 있으니 설탕을 특별한 음식이라고 생각할 일도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설탕이 흔하지 않았던 시절 사람들은 무엇으로 단맛을 냈을까?
설탕의 역사를 찾아보기 시작한 것도 이 작은 궁금증 때문이었습니다.
알아보니 지금은 너무 흔한 설탕이 몇백 년 전에는 아무나 마음껏 먹을 수 있는 식품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시대에는 부와 신분을 보여주는 귀한 식품이었고, 설탕을 더 많이 생산하기 위한 경쟁은 세계의 역사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사탕수수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인도와 유럽을 지나 대항해시대와 식민지, 대서양 노예무역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옛 식탁을 들여다보면 또 다른 단맛인 조청과 엿을 만나게 됩니다.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는 설탕 한 스푼에는 생각보다 훨씬 긴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 |
| 사탕수수와 설탕, 조청으로 살펴보는 설탕의 역사 |
1.설탕은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
설탕의 역사를 이해하려면 먼저 사탕수수를 알아야 합니다.
사탕수수는 줄기 속에 당분이 풍부한 식물입니다. 오래전 사람들은 지금처럼 정제된 하얀 설탕을 먹은 것이 아니라 사탕수수 줄기를 씹어 그 안에서 나오는 달콤한 즙을 즐겼습니다.
사탕수수의 오래된 기원은 뉴기니를 포함한 태평양 지역과 동남아시아 일대와 연결됩니다. 이후 사탕수수 재배는 여러 지역으로 퍼졌고 인도에서도 널리 이용되었습니다.
특히 인도에서는 사탕수수 즙을 끓이고 농축해 결정 형태의 당을 만드는 기술이 발전했습니다.
이것은 꽤 중요한 변화였습니다.
사탕수수 즙은 그대로 두면 오래 보관하기 어렵지만 결정 형태로 만들면 보관과 운반이 훨씬 편리해지기 때문입니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지금 너무나 당연하게 사용하는 설탕도 처음부터 하얀 가루의 모습으로 존재했던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이 단맛을 오래 보관하고 멀리 운반하기 위해 고민하면서 지금과 같은 설탕으로 발전해온 것입니다.
음식의 역사를 들여다볼수록 느끼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지금은 당연하게 사용하는 식재료도 그 시작을 찾아가 보면 대부분 사람들의 작은 필요와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는 점입니다.
2.유럽에서 설탕은 부자들의 음식이었다
사탕수수와 설탕 제조 기술은 여러 지역으로 전해졌고 페르시아와 아랍 세계 등을 거쳐 유럽에도 설탕이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당시 유럽의 평범한 사람들이 오늘날처럼 설탕을 마음껏 사용했던 것은 아닙니다.
설탕이 귀했던 시절 유럽에서 오랫동안 중요한 단맛을 담당했던 것은 꿀이었습니다.
반면 멀리서 운반되어 온 설탕은 귀하고 비쌌습니다. 향신료나 약재처럼 취급되기도 했고, 부유한 사람들의 식탁에서는 설탕으로 만든 음식과 화려한 장식이 부를 보여주는 수단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 대목이 참 재미있습니다.
지금은 설탕을 너무 많이 먹는 것을 걱정하는 시대가 되었지만, 몇백 년 전에는 단맛을 마음껏 즐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부의 상징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평범하기만 한 설탕 한 봉지가 당시 사람들에게는 전혀 다른 의미였겠지요.
음식의 가치는 시대에 따라 이렇게 달라집니다.
3.설탕을 원하는 사람이 많아지자 세계가 움직였다
설탕의 맛을 알게 된 사람이 많아질수록 수요도 커졌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습니다.
사탕수수는 따뜻한 기후에서 잘 자라는 작물이기 때문에 유럽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대규모 재배가 쉽지 않았습니다.
대항해시대 이후 유럽 세력이 바다 건너 여러 지역으로 진출하면서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브라질과 카리브해를 비롯한 아메리카의 여러 지역에 대규모 사탕수수 플랜테이션이 만들어졌고 설탕 생산도 크게 늘어났습니다.
생산량이 증가하면서 설탕은 점차 더 많은 사람이 접할 수 있는 상품이 되어갔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설탕의 역사는 결코 달콤하지만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4.달콤한 설탕 뒤에는 쓰라린 역사가 있었다
사탕수수를 대규모로 재배하고 수확한 뒤 설탕으로 가공하려면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습니다.
유럽의 식민 세력은 아프리카에서 강제로 끌려온 수많은 사람을 아메리카의 플랜테이션과 설탕 생산 현장에서 노동하게 했습니다.
설탕 산업은 대서양 노예무역과 깊이 얽히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부분을 알고 나니 설탕이라는 식재료가 조금 다르게 보였습니다.
한쪽에서는 사람들이 차와 커피에 설탕을 넣으며 달콤한 맛을 즐겼습니다. 하지만 그 설탕이 생산되는 다른 한쪽에서는 자유를 빼앗긴 사람들이 가혹한 노동을 견뎌야 했습니다.
누군가가 즐긴 달콤함 뒤에 다른 누군가의 고통이 있었던 것입니다.
설탕의 역사가 단순한 음식 이야기에 그치지 않는 이유입니다.
음식은 사람들이 무엇을 먹었는지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의 경제와 무역, 노동, 권력 그리고 세계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었는지도 보여줍니다.
5.설탕은 어떻게 평범한 사람들의 음식이 되었을까?
귀하고 비쌌던 설탕이 오늘날처럼 흔해지는 데에는 여러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중 하나가 사탕무를 이용한 설탕 생산입니다.
설탕은 사탕수수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탕무의 뿌리에도 설탕의 주성분인 자당이 들어 있습니다.
유럽에서 사탕무를 이용한 설탕 생산이 발전하면서 열대지역의 사탕수수만이 설탕을 얻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산업화와 정제 기술의 발전, 운송과 유통의 확대까지 더해졌습니다.
설탕 생산량이 늘고 가격이 내려가면서 설탕은 점차 평범한 사람들의 식탁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설탕이 흔해지자 우리가 먹는 음식도 달라졌습니다.
케이크와 과자, 사탕, 잼, 초콜릿, 음료 등 설탕을 이용한 다양한 음식이 대중화되었습니다.
한때 부유한 사람들의 식탁을 장식하던 설탕이 결국 평범한 가정의 찬장 속 설탕통까지 들어온 것입니다.
6.설탕은 다른 음식의 맛까지 바꿨다
설탕의 영향은 설탕 자체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커피를 생각해보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커피에는 특유의 쓴맛이 있고 차에는 떫은맛이 있습니다. 카카오 역시 그 자체로는 우리가 흔히 먹는 초콜릿처럼 달콤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설탕이 더해지면서 사람들이 이 음식들을 즐기는 방식도 달라졌습니다.
차와 커피를 달게 마시는 문화가 생겼고, 카카오에 설탕 등을 더해 달콤한 초콜릿을 만드는 문화도 발전했습니다. 과일과 설탕을 함께 조리해 잼과 보존식품을 만드는 방법도 널리 이용되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설탕은 자신의 맛만 만들어낸 것이 아닙니다.
다른 음식의 맛과 사람들이 음식을 즐기는 방식까지 바꾼 식재료였습니다.
설탕 하나의 역사를 알아보기 시작했는데 커피와 차, 초콜릿의 역사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7.우리 조상들은 설탕 없이 어떻게 단맛을 냈을까?
세계의 설탕 역사를 알아보다 보니 자연스럽게 우리나라의 옛 식탁이 궁금해졌습니다.
설탕이 지금처럼 흔하지 않았던 시절 우리 조상들은 무엇으로 단맛을 냈을까요?
우리에게는 우리 방식의 단맛이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조청과 엿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쌀을 비롯한 곡물과 엿기름을 이용해 단맛을 만들어냈습니다.
엿기름은 보리를 싹 틔워 만든 것으로, 엿기름에 들어 있는 효소의 작용을 이용하면 곡물의 전분을 당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이렇게 당화한 곡물물을 걸러 오랫동안 졸이면 달고 걸쭉한 조청이 됩니다. 이를 더욱 가공하면 엿도 만들 수 있습니다.
저는 이 부분이 설탕의 역사만큼이나 흥미롭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설탕을 쉽게 구할 수 없다고 해서 단맛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곡물과 엿기름을 이용해 스스로 단맛을 만들어냈습니다.
8.사탕수수와 조청이 보여주는 서로 다른 단맛
사람들이 단맛을 좋아한 것은 어느 한 지역만의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단맛을 얻는 방법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환경에 따라 달랐습니다.
사탕수수가 잘 자라는 지역에서는 사탕수수를 이용했고, 벌꿀에서 단맛을 얻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곡물과 엿기름을 이용해 조청과 엿을 만들어 단맛을 즐겨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조청을 단순히 ‘설탕이 없던 시절 사용했던 대체품’이라고만 생각하는 것은 조금 아쉽습니다.
곡물을 주식으로 살아온 사람들이 곡물 속 전분에서 단맛을 끌어냈다는 점에서 조청과 엿은 우리 식문화의 특징을 보여주는 음식이기 때문입니다.
사탕수수와 조청.
재료도 다르고 만드는 방법도 다릅니다.
하지만 그 안에는 공통된 인간의 호기심이 숨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단맛을 얻을 수 있을까?
세계 곳곳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살아가는 환경과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이용해 저마다 다른 답을 찾아냈습니다.
이런 점 때문에 음식의 역사를 알아가는 일이 재미있는 것 같습니다.
9.그렇다면 조선시대에도 설탕이 있었을까?
여기까지 알아보고 나니 또 하나의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조청과 엿이라는 단맛이 있었던 우리나라에 설탕은 언제 들어왔을까요?
조선시대 사람들도 설탕을 먹었을까요?
만약 설탕이 있었다면 누구나 먹을 수 있었을까요, 아니면 왕실이나 일부 부유한 사람들만 맛볼 수 있었을까요?
그리고 설탕은 언제부터 지금처럼 평범한 가정에서도 쉽게 사용하는 식재료가 되었을까요?
하나를 알아보니 또 다른 질문이 생깁니다.
다음에는 ‘조선시대에도 설탕을 먹었을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해 우리나라 설탕의 역사를 조금 더 자세히 따라가 보려고 합니다.
설탕 한 스푼을 다시 바라보다
처음에는 그저 매일 보는 하얀 설탕이 어디에서 시작됐는지가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설탕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니 사탕수수와 인도, 유럽의 식탁과 대항해시대, 식민지와 노예무역, 사탕무와 산업화까지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우리나라의 식탁으로 돌아오니 조청과 엿이라는 또 다른 단맛의 역사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나씩 알게 될 때마다 평범했던 음식이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오늘 우리가 설탕 한 스푼을 사용하는 데에는 몇 초도 걸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한 스푼이 지금의 모습으로 우리 식탁에 오기까지는 아주 긴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사람들의 발견과 기술이 있었고, 더 달콤한 것을 원하는 욕망과 거대한 무역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사람들의 아픈 역사도 있었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식탁은 아주 작은 세계사 책인지도 모릅니다.
다음번 설탕통을 열게 된다면 하얀 설탕 한 알갱이가 얼마나 먼 길을 지나 우리 앞까지 왔는지 한 번쯤 떠올려봐도 좋겠습니다.
